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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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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라치


BY 캐슬 2004-03-15

  스크라치


                                        정 은영

  저녁 외출에서 돌아오니 남편은 이미 잠이 들었습니다. 현관문을 열어주며

나를 보고 자꾸 웃는 딸이 이상합니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딸은 ‘그냥 그럴 일이 있다’ 면서 또 웃습니다.

한참 후 tv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킨 내 곁으로 딸이 다가와 앉습니다. 무슨 할말이 있는 듯 망설이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습니다.

"엄마 내가 아빠얼굴에 손톱으로 쫘 아~악 했다"

집게 손 가락을 뻗어 오른 쪽으로 가로로 쭉 길게 그리는 시늉을 합니다.

"화~악 그게 뭐냐"

아빠 얼굴을 화~악 이렇게 라며 손가락으로 한일자를 그려 보입니다.

아빠 얼굴을  어떻게 했느냐는 물음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제 방으로 달아나 버립니다.

 딸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하던 남편의 소원을 하느님이 들어주셨는지 예쁜 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첫 아들이 태어나고 5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사월의 첫날 뽀얀 얼굴로 천사는 우리 세 식구 곁으로 왔습니다.

 딸이 귀한 집이라 병원에 선 걸음에 병원으로 달려오신 시아버지 내외분과 입이 귀에 걸려서 맨발로 달려온 남편으로 보고 던진 첫마디가 ‘양말 좀 신고오지 그랬어.’ 였습니다.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온 딸은 밝기만 하여 어느 자리에서건 밝은 빛이 되어 주위를 환하게 하는 아이가 되고는 합니다. 때로는 아빠의 사랑이 지나친듯하여 자주 경고를 주지만 남편도 딸아이도 나의 경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시집 갈 때는 꼭  아버지와 함께 가라는  나의 어이없는 핀잔에 생각해 보겠다며 배시시 웃어 버립니다.

얼마나 잤을까? 새벽잠을 뒤척이다 눈을 떴습니다. 마주보게 된 남편의 훤한 이마에 붉게 그어진 말라서 굳어진 붉은 줄로 길게 이어진 피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피를 닦으려다 딸아이가 지난 밤 내게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일까? 다시 누워 잠을 청해 보았지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을 쉽게 이룰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아침 딸아이 학교 보낼 준비를 하면서

"너 아빠 얼굴이 그게 뭐냐? 흉 지겠는데…손톱으로 그랬냐?"

"응!"

“내 그럴 줄 알았다. 두 사람 항상 장난이 지나치다 했더니… 잘했다. 너 아빠얼굴을 그렇게 해놓고도 무사한걸 보니 신통하다."

나무라는 말을  듣고도 딸아이는 싱글 벙글 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늦게 일어난 남편 거울부터 들여다봅니다.

거울을 보는 남편 얼굴이 잔뜩 심각해집니다. 말라버린 붉은 피를 지우니 선명하고 붉게 그어진 줄 하나가 더 뚜렷해집니다.

“남들이 보면 마누라하고 한판 했다고 오해하기 좋겠다."

나의 핀잔에  남편은 거울만 들여다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세수를 하더니 따갑다고 울상입니다.

하기는 손톱으로 길게 패인 그 상처에 물이 묻었으니 얼마나 따가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뭘 바르면 되느냐고 약상자를 들고  옵니다.

"연고 말고 빨간약을 발라야 되는데 보기 흉해서 어쩌나?"

했더니 그래도 발라 달랍니다. 약을 바르니 또 따가워 죽겠다고 아이처럼 파닥거립니다. 후~입으로 불어주며

'무슨 놈의 가시네 가 아빠 얼굴을 이렇게 할퀴어 놓는데...'

투덜대는 나를 보면서도 남편은 빙긋 웃었다 말았다 반복하며 아프다고 징징대는 변덕을 부립니다. 남편도 출근하고 종일 나는 남편 이마의 상처가 왜 생겼는지 궁금해서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교복도 벗기 전에 거실 의자에 앉혔습니다.

“왜 아빠 얼굴을 그렇게 해 놓았냐?”

는  나의 다그침에 딸아이는 또 킥! 킥! 또 웃습니다.

"엄마 내가 이야기기 해 줄까. 그런데 아빠가 정말 얘기 안 해?"

며 되묻습니다.

"그래 뭔데. 무슨 일인데. 빨리 말해 봐라."

"엄마가 해 놓고 간 저녁 다 먹고 아빠하고 장난치며 놀다가 아빠가 주무시러 안방에 들어가는 거 보고 내가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갔지. 샤워하고 보니 속옷을 안가지고 들어갔지 뭐야. 그래서 아빠도 주무시고 집에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윗옷만 입고 잠옷바지로 대충 가리고 내 방으로 갔지. 내 옷장 문을 열려고 하는데 아빠가 행거에 걸린 옷  뒤에 숨어 있다가 확! 안하나! 씨 내가 얼마나 놀랬는줄 아나. 그래서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손으로 확~하다보니 손톱에  아빠 얼굴이 할퀴어졌다. 그래서 아빠 얼굴에 피났다 아이가. 아빠는 아빠대로 놀라고…나는 나대로 놀라고…이 씨!"

그림이 그려집니다. 늘 딸아이와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 또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번엔 좀 심했다 싶었는지 남편이 그래서 제 물음에 말을 못했네요.

그날 저녁 남편이 또 빨간 약병을 들고 제게 옵니다. 훤한 이마에 빨간 약을 바르니 또 따갑다고 칭얼댑니다.

"따가워도 할 수 없다"

고 약을 쌀쌀맞게 바르는 나를 보며  남편은 당신이 무엇을 아느냐는 눈치 입니다.아무것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건지? 다 안다고 하고 남편을 혼내야 하는지?

고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