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며칠 째 늦은 귀가 중이다. 오늘도 여지 없이 자정을 넘기고 새벽 2시가 다 되어 들어왔다. 술 냄새를 폴폴 뿌리면서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새벽 잠이 깨어 버린 나는 쉽게 잠 들지 못해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삐!삐!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는 귀를 기울여도 무슨 소리인지 얼른 알 수가 없다. 잠을 잘려고 해도 도저히 신경이 쓰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시 삐!삐! 자꾸만 들리는 그 소리에 온 신경을 모두었다. 소리를 찾아 거실로 나갔다. 범인은 남편의 윗 저고리 안 주머니 핸드폰 그 놈이었다. 확인하지 못한 문자 메세지 때문이였다. 문자를 확인한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했다.
"오빠 잘 들어 갔어. 술 많이 먹었는데 괜챦아 사랑해!."
알 수 없는 이모티 문자들이 핸드폰 화면에 줄 지어서서 나를 향해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명치 끝을 망치로 세차게 맞은 듯 난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고 말았다. 이튿 날은 일요일이었다. 전날 과음으로 늦게 일어난 남편은 집 안에서 종일 미그적대고 있었다. 건넌방에서 컴퓨터 고 스톱에 남편이 빠져 있을 때 안방 남편 핸드폰에서 또 삐!하는 수신음이 들렸다. 얼른 열어본 핸드폰에는
'오빠 일요일인데 뭐해? 나는 여태까지 잤어.'
찍힌 번호를 보니#169 051-000-0000이다. 내가 알기로는 #169라는 숫자를 누르면 발신자의 번호가 상대편 번호에 뜨지 않는 걸로 아는데 여자는 자기번호 앞에#169를 눌러서 자신의 번호를 숨기려 하는 것이다. 참 어이가 없다. 얼른 전화기를 원래자리에 두고 남편에게 로 간다.
"핸드폰에 메세지 오는 소리 나는거 같은데?."
"올데 없어"
내 말을 무시한다. 얼마가 시간이 지났을까? 남편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얼른 남편 전화기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여자가 받는다. 얼른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득하기만 했다.
침착해야지를 되뇌이며 그 날을 보내고 다음 날 나는 핸드폰 회사의 고객센타로 갔다. 다행히 남편 핸드폰은 내 명의로 개통한 것이라 나는 내역서 조회를 의뢰 할 수 있었다. 최근 3개월치 사용 내역서를 받아든 나는 고객센터 구석진 자리로 옮겨 앉았다. 찍혀 있는 번호는 모두 집과 사무실 친구 내 번호가 대부분이었다.
어제 저녁 그 찍혔던 그 여자 전화번호는 단 두 통 뿐이었다.
'에게 이게 뭐야'
무슨 대단한 걸 놓친 사람처럼 나는 상길감에 빠졌다. 다행이라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허탈했다.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니 재미있다고 웃는다.
"설마하니 우리 아빠가 무슨 일 있을라구요. 에이 엄마 그래서 어제 우울했구나 아빠가 알면 엄마 미안해서 어쩔려구 그래"
"그래도 얘 확인하는 차원에서 어제 그 여자네 집으로 전화 해 볼거다"
그 여자 번호로 전화를 했다.나름대로 교양을 위장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토요일 새벽과 일요일에 011-000-0000로 전화하셨지요"
"아! 예 제가 잘못했다고 어제 아저씨 전화하셨길래 말씀드렸는데요"
앳된 여자의 목소리는 내가 의심할 만한 나이의 여자가 아닌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미안합니다."
얼른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며칠 후 분리 수거를 위해 폐 휴지를 현관 앞에 아침 일찍 내 놓았다. 출근하던 남편 왠 종이를 들고 들어 오더니 내 앞에 들이민다.
"이거 뭐야 내 전화내역서 같은데"
하며 들여다 본다.
"응 그거 당신 요금 조회해 볼려고 내가 떼 본거지?"
시원한 대답을 얼른 못하는 내게 남편은 한마디 합니다.
"이 사람아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술을 먹는다는걸 아시요 잉~"
민망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