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이었다.
비를 좋아하는 친구와 무료함을 삭힐겸 산사의 초가집을 찾았다.
빗소리와 화음을 맞춘 추녀의 풍경소리가 먼저 나그네를 반긴다.
살구나무와 감나무가 병풍을 두른 듯 아늑한 초가.
어미소 잔등처럼 휘어진 토담벽엔 초록빛 호박넝쿨이 엉금엉금 이어가고
단비에 젖은 애호박은 쌩긋쌩긋 웃는다.
담벽에 줄서듯이 미리 피어난 코스모스는 맞는 비가 간지러운 듯 몸을 비튼다.
비에 젖어 싱그러운 자태가 더더욱 짙은 향수를 자아내고 있었다.
주변의 풍경이며 일하는 아낙들의 옷차림이며 정갈한 토속 음식이 옛스럽고
앙증맞은 옹기에 담겨진 동동주는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표주박에 담겨진 술의 모양새가 점점 운치를 돋궈주듯 수줍게 웃는다.
잠깐 정취에 젖어 머뭇거리는 동안
도란도란 사랑방 손님의 이야기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발자욱처럼 자박거린다.
비 오는 날이면 공연히 마음 한구석이이 후련해진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듣는 빗소리는 긴 여행에서 돌아와 여독을 풀어내는
커다란 샤워기의 물소리처럼 시원하다.
오는 비를 따라 한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은근히 장난스런 빗줄기의 심사에
동심으로 돌아 간다.
무거운 듯 떨어지는 빗방울은 가만히 서있는 나무를 붙잡고 장대질하다가, 넓직한
잎사귀에 무어라 속삭이며 이내 곤드박질을 하고 만다.
마치 아이들의 음악에 맞춰 그 물위에서 퐁퐁 뛰다가 넘어지는 모습처럼.
어린시절 친구와 흙장난을 하다가 추녀 끝에 모아지는 빗줄기에 손을씻던 기억이 난다.
깨끗이 씻으려고 손바닥을 마냥 비비다보면 빗줄기에선 출렁이는 파도 소리가 났다.
해질녁에 빗소리는 오손도손 정담을 나누던 옛친구의 이야기처럼 잔잔하다.
고향집 초가지붕에 스며드는 빗소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