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길게 내 앞에 놓인 넓은 라인을 따라 누구의 도움에도 의지함 없이 나 혼자서 오로지 나, 혼자의 근력과 정신력으로 화이널 라인에 닿을 그 순간까지 템포 잃지 않고 너무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늘 하던대로 그 속력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내 모습 흐트러지지 않고 달라지지 않고 지침없이 움직이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답은 딱 두 개. 마라톤… 그리고 인생. 그렇게 달리기를 싫어하던 내가 조금만 뛰어도 심장이 아파 헐떡이던 내가 삶이 마라톤과 같은 긴 달리기라는 것을 깨달은 후로 나는 달리기가 좋아졌다. 도전을 좋아하는 나. 모험을 못말리게 저지르는 나. 살아가는 것이 속도 불변의 달리기라면 한번 도전해볼 수 있겠다, 싶었고 속도조절만 잘 하면 그다지 지칠 일도 없을 것 같았고, 노란 벽돌길만 따라가던 도로시처럼 물론 가끔은 돌멩이도 튀어나오겠지만 잘 찾아보면 달리기 안성마춤의 길이 근처에 있을테니까 그 길만 따라가면 인생이 재미있겠다, 여겨졌다. 돌부리를 넘는 것도 간지러울 것 같고 그게 조금 커서 넘어져 무릎이 깨어지면 쓰윽 한 번 문지르고 더 심하면 질끈 동여매고 또 다시 달리면 되지 뭐, 하는 심정이 될테니까 난, 그럴테니까 뜀박질하는 이유라면 화이널 라인에 닿기 위해서, 이고 속도를 내지 않는 이유를 대라면, 쉬이 지치지 않기 위해서, 이고 화이널 라인에 닿은 그 다음은 뭐할래..하고 누가 물으면, 그건 내 알바가 아니지, 난 그저 달리는 동안 행복하면 되는 거야, 라고 대답할 거다. 그러니까 난 달리기가 좋아졌다. 내 인생이 마라톤이라는 것을 안 후론 운동회 때마다 늘 꼴지는 나였는 데 어떤 날엔 그게 싫어서 부러 넘어지기도 했던 나였는 데 이젠, 그 길에서 만나는 어떤 경쟁자도 두렵지 않다. 나는 정말 황영조 선수도 부럽지 않다. [카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