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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 마라톤하다


BY 아미라 2005-11-30

 

길게 길게 내 앞에 놓인 넓은 라인을 따라

누구의 도움에도 의지함 없이

나 혼자서

오로지 나, 혼자의 근력과 정신력으로

화이널 라인에 닿을 그 순간까지

 

템포 잃지 않고

너무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늘 하던대로 그 속력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내 모습 흐트러지지 않고

달라지지 않고

지침없이 움직이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답은 딱 두 개.

마라톤그리고 인생.

 

그렇게 달리기를 싫어하던 내가

조금만 뛰어도 심장이 아파 헐떡이던 내가

삶이 마라톤과 같은 긴 달리기라는 것을 깨달은 후로

 

나는 달리기가 좋아졌다.

 

도전을 좋아하는 나.

모험을 못말리게 저지르는 나.

 

살아가는 것이 속도 불변의 달리기라면

한번 도전해볼 수 있겠다, 싶었고

속도조절만 잘 하면 그다지 지칠 일도 없을 것 같았고,

노란 벽돌길만 따라가던 도로시처럼

물론 가끔은 돌멩이도 튀어나오겠지만

잘 찾아보면 달리기 안성마춤의 길이 근처에 있을테니까

그 길만 따라가면 인생이 재미있겠다, 여겨졌다.

 

돌부리를 넘는 것도 간지러울 것 같고

그게 조금 커서 넘어져 무릎이 깨어지면

쓰윽 한 번 문지르고 더 심하면 질끈 동여매고

또 다시 달리면 되지 뭐, 하는 심정이 될테니까

, 그럴테니까

 

뜀박질하는 이유라면 화이널 라인에 닿기 위해서, 이고

속도를 내지 않는 이유를 대라면, 쉬이 지치지 않기 위해서, 이고

화이널 라인에 닿은 그 다음은 뭐할래..하고 누가 물으면,

그건 내 알바가 아니지, 난 그저 달리는 동안 행복하면 되는 거야,

라고 대답할 거다.

 

그러니까 난 달리기가 좋아졌다.

내 인생이 마라톤이라는 것을 안 후론

 

운동회 때마다 늘 꼴지는 나였는 데

어떤 날엔 그게 싫어서 부러 넘어지기도 했던 나였는 데

 

이젠, 그 길에서 만나는 어떤 경쟁자도 두렵지 않다.

나는 정말 황영조 선수도 부럽지 않다.

 

[카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