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카이로에는 아타바라는 대규모 도매시장 지역이 있다.
그리고 그 지역 외곽의 마을에 올해 열 여덟 살인 대학생
핫산 쉰디는 살고 있었다.
인구 이백만.
열악한 시설의 보건소 하나.
녹슬은 상수도 파이프 한 줄을 수백 세대가 연결해
사용하는 곳.
일년 내내 관공서의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 않는 곳.
길바닥 전체가 쓰레기로 강물을 이루는 곳.
질병을 앓는 어린아이들로 신음하는 곳.
삶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온종일 시샤(*몰약이 들어있는
물담배)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의 하루 앞이 아득하여 이웃의 어려움에 차라리
한쪽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일평생 가난의 한에 맺히어 살다 또 그렇게 한을 품고
스러져가는 사람들.
그곳은 카이로 전체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 지역이었다.
누구 하나 우리를 보아달라고 목소리 높여 호소한
사람도 없었고
그럴만한 배짱을 가진 이도 없었고
나이든 이는 나이든 이대로 삶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헤어날 수 없는 암울한 미래에
울분을 품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곳에서 태어난 다른 사람들처럼
어린 핫산 역시 그곳에서 태어나
역시 그의 이웃의 아이들처럼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며 어린시절을 보냈고
아버지를 잃었고
어린 시절 내내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렸고
단 한 번도 배불리 달걀조차 먹어본적이 없으며
이웃들처럼 두 남동생과 두 여동생 그리고 홀어머니를 가진,
지극히 평범한 그 지역의 아이였다.
그러나
온집안 식구들이 하루에 단 한끼
그것도 다메이야(*콩을 갈아 튀긴 완자로 이집트의 서민음식)
와 보리빵으로 연명을 하면서도,
어린 핫산은 친구들보다 영리했고
조용했고
생각이 깊으며
예의바른 아이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2005년 4월 어느날,
핫산은 학교에서 돌아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극히 평온한 표정으로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너무나도 평범하게 집을 나섰다.
그가 여느 날과 다른 행동을 취한 것이 있다면
현관열쇠를 어머니에게 맡겼다는 것뿐이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거리의 카페에서 시샤를 입에 문 채 촛점없는 시선으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앉아있던
마을의 남자들은
흑백텔레비젼에 나타난 느닷없는 참사현장보도를 보게된다.
‘카이로 한가운데에서 폭탄이 터졌다.’
장소는 칼릴칼릴리 바자르와 그 일대였고
그 곁에 있던 아즈하라 모스크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이슬람 최고의 종교대학이다.
폭탄은 바자르와 모스크 양쪽에 투척되었다.
용의자 세 명이 전원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고
그들 중 한 명은 폭탄이 터지는 순간 절명했다.
그 지역을 여행하던 외국관광객 몇 명과
장을 보러 나왔던 시민 몇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전세계가 카이로 중심에서 테러가 발생한 것으로 보도했다.
그렇게 안전하다는 카이로에서 폭탄이 터졌다.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소행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별의 별 근거도 없는 소문이 발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다음날 한떼의 군인과 경찰들이 핫산의 마을을 봉쇄했다.
살아남은 용의자 세 명의,
일가친척들이 모두 체포되어 어디론가 끌려갔다.
핫산의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과 숙부의 가족들까지
전부 끌려간 후에야
마을사람들은 정확히 무슨 일이 누구에 의해서 일어났는 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 아이 핫산 쉰디가 죽었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밤새 가슴을 끌어안고 아파하던
핫산이 죽었다.
마을 전체가 통곡했고 가슴을 쳤다.
카이로 시민들과 외신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이 마을에
비로소 시선을 두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 마을에 앞으로 어떠한 변화가 올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이
지워져있던 이 마을을 그들의 망각 속에서 되살려내었다.
어쩌면 핫산 쉰디가 목숨을 걸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런 목적에서였는 지도 모른다.
신문을 읽고 집에서
집을 나서 일터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내내 핫산을 떠올렸다.
열 여덟의 소년이 아파했던 그만큼의 슬픔에는
미치지 못하였겠지만,
그와 함께 그의 마을의 한 사람이 되어 서러워했고,
아득해했고,
분노했다.
몇 날 며칠을 두고 핫산을 기억해냈고
신문지상에 드러난 그의 맑은 눈동자와
소녀처럼 가녀린 얼굴을 되새겼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가 던진 폭탄에 그날 그 자리에서 내가 목숨을 잃었다해도
나는 과연 그를 원망할 수 있을 것인가를.
카이로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가슴이 많이, .. 아프다.
밤새,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