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24

내 사랑 가브리엘 전편(제1부~제12부까지) 묶음


BY 아미라 2004-11-28

              

                 사이버 소설 '내사랑 가브리엘'

 

 

                                         지음   아미라    (필명)

                                                

 

   

                                  1

 

     이파리마저도 연보라빛인 자카란다 나무가 눈송이 같은 잎새들을 미풍에 실어보내고 있다. 쏟아지는 땡볕 사이로 열심히 짬을 내어 날아오는 바람이건만 숨막히는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사람도 짐승도 움직이지 않는 시간, 속없는 수리 한 마리만이 적도의 하늘을 거들먹거리고 있다.

 

 한동안 잘 나가던 그의 빠알간 프라이드가 오늘 아침 교회를 떠나올 때부터 털털 잔기침을 불안하게 시작하더니만, 오사와로드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아예 꿈쩍도 하질 않는다.

그가 이곳으로 발령 받아 오기 전부터 이미 선임자들이 끌고 다니던 것이긴 하지만, 막상 아프리카에 도착해서는 그 이상의 노역은 있던 적도 없었다는 양 무던히도 혹사시킨 차였다. 본사인 한국에서 이 지역으로 수출할 때부터 이곳 사정에 맞추어 핸들을 오른 쪽에 붙인 차였으며 웬만한 자갈길이 아니면 그의 성스러운 사명을 위하여 어디든지 그와 함께 했던 애마이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 십 년쯤 끌고 다녔던 중고차를 거의 현지에서의 신차 한 대값을 주고 구입한다. 이들에게는 폐차란 개념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운전석 문만 온전히 달려있으면 그리고 느적느적 가든 지 쿨럭쿨럭 가든 지 일단 구르기만 하면 아무리 오래된 차라도 반드시 돈을 받고 되판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람의 몸에서 나는 분비물 외에는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 일단 이곳에 적응한 사람이면 그가 백인이든 지 동양인이든 지간에 어느 새 알뜰살뜰함이 몸에 배어져 저도 모르게 플라스틱병 하나조차도 챙기게 된다.

 

지나가는 차들이 눈이 둥그레져서 사람과 차를 번갈아 본다. 그들이 보기에도 물에 불은 것 같은 백인사내의 허리통의 굵음의 엄청남에 처음 놀라고, 그 덩치가 쭈그러진 빵 포장지 같은 작고 빠알간 차 안에서 어슬렁거리며 나오는 모습에 또 놀라고, 그만한 거구의 사내가 고만한 차를 타겠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는 눈치다.

 

 

차 안이나 건물 안이 아니면 사람구경하기 힘든 시간이다. 카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차를 두고 공중전화 있는 데까지 가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외국인의 것은 잘하면 내것, 선교사의 것은 온전히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가 아무리 선교사역을 하러 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손 잘타는 나라에서 마음 속에 자비와 사랑을 유지하기란 쉽지가 않다. 이대로 차 궁둥이를 밀고 수리센터나 전화 있는 곳까지 가볼까 카폰 있는 차를 골라 세워 부탁을 해볼까 생각이 많아졌다.

 

근래에 들어 부쩍 카폰인지 핸드폰인지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갖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고 형편이 안되는 어떤 현지인들은 고장난 무선전화기를 손에 척 들고서 으시대며 거리를 활보한다. 우선 아무차나 세워서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오른 손 엄지 손가락을 위로 향하게 하고 팔을 쭉 폈다. 대학 때 해본 히치하이크의 경험을 살려보려는 중이다. 아니나다를까 그가 팔을 쳐들자마자 달리는 차들의 반응이 대단해졌다. 어떤 차는 그의 망치 같은 주먹이 자기차를 내리치려는 줄 알고 기겁해서 냅다 꽁무니를 뺐고, 또 어떤 차는 저 빵봉지만한 빨간 차도 저 거인이 타서 저지경이 됐을거야 지레 짐작하면서 줄행랑을 놓았다. 아무도 그 망치 위에 볼록 솟은 앙증맞은 엄지손가락은 보지 못했다. 갑자기 차들이 속력을 내자 그 무더위에도 찬바람이 쌩쌩 불기 시작한다.

  

  그런 상태로 삼 분쯤 있자니 몸뚱아리가 땀 짜내는 기계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자력으로 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강의시간까지는 아직 십 오 분이 남아있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려주었으면 할만큼 바짝 애가 탔다.

 

  "이봐요, 뭐가 문제죠?"

 

가브리엘이 돌아보았을 때 그의 곁에는 어느 새 81년형 피아트가 멈춰있었다. 상큼한 단발머리의 키 큰 동양여성이다. 그가 뭐라고 입도 열기 전에 눈치빠른 그녀는 성큼성큼 차에서 나와 '구겨진 빵봉지'의 본넷을 열어젖혔다.

 

  그로부터 정확히 십 오 분 후에 목사 가브리엘은 선교학교 교실에서 똘망똘망한 까만 얼굴들을 앉혀놓고 강의를 할 수 있었다.

  

                                

2

 

  이삭은 글을 몰랐지만 그가 글을 모른단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만큼 '무진장 영악한' 사람이었다. 운전면허를 딸 때에도 아이디카드를 갱신할 때에도 언제나 그의 곁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따라다녔다. '무진장 영악한' 이삭은 '억수로 재수도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성경의 한 구절도 스스로는 깨칠 수 없는 그가 그토록 열심히 주말마다 예배에 참석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일 년 전 새로 부임한 한 백인목사의 짧은 설교 때문이었다.

 

" 단 한 마디면 이 세상도 천국이 됩니다.

  '하나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이 한 마디면 다 된 겁니다.

 

 어떤 사람도 모르는 사람 붙들고 내 얘기 들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번에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요. 또 어떤 사람도 깊이 믿는 상대가 아니면 마음 속의 고민을 털어놓으려 않을 겁니다. '하나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누구보다도 완전한 상대자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

 

  그날도 지금처럼 무더운 12월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지붕들처럼 몸냄새에 찰싹 붙은 날파리들로 어지간히 짜증도 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찬송하고 축도하면 예배 - 그때는 예배가 뭔지도 몰랐었지만,- 가 끝나는 걸로 알고 있다가 설교를 해야 한다고 쿵당쿵당 앞으로 걸어나가는 백인 목사님의 말에 기겁을 했었다. 하지만 이 백인은 그의 첫인상이 남기던 것만큼 미련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입고 있는 셔츠도 소매끝이며 깃끝이 시접이 보일정도로 닳아빠져 있었다. 수입도 시원찮을 게 뻔하다. 제 덩치를 주체못해 삐질삐질 쏟아내는 땀은 폭포수같다. 제 나라에서 걱정없이 살 수도 있을 '백인'인 데 굳이 이런 데까지 와서 왜 저 고생일까 생각하면 머리도 과히 좋아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자기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아닌가. 근데 어쭈.. 설교도 시원시원하다. 설교가 끝난 뒤에는 시원한 소다수를 '들고다니는 냉장고' - 아이스박스-에서 꺼내어 모두에게 나눠주는 화끈함도 있다. 더군다나 우리를 위해서 왔다는 선교사라면서 오히려 예배에 참석해주어 자기가 고맙다고 말한다.

  '참 싱거운 사람..' 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날 오후는 교회에서 집까지 무려 세 시간을 여느 현지인들처럼 자연스럽게 걸어서 돌아왔다.

 

 

이삭이 사는 지역은 판자를 누덕누덕 기워서 방을 만들고 또 같은 재료로 지붕을 이은 어슷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마흔 채쯤 모여 사는 낮은 지대였다. 같은 현지인들조차도 차별을 두고 싶어하는 그곳을 외지 사람들은 리버로드라고 불렀다.

 

그의 이웃들은 거의 그의 일족이라고 치부해도 틀림이 없다. 어떤 노인들은 일생 중에 단 한 번도 땅이 '마를날 없이 끈끈하고 질척대는' 그곳을 떠나본 적이 없었고, 거기 아이들은 인근의 교회에서 일주일에 네 번 오는 선교사들을 통해 글을 깨쳤다. 몇 대 째 그곳에 살다보니 식구가 늘면 판자 몇 개를 덧대어서 방을 만들고 부엌을 만드는 일들이 생겨났고, 종국에는 앞집 뒷집 옆집이 다 몇 대조의 형제들의 자손들로 채워졌다.

 

그러던 몇 년 전부터는 땅주인이라는 이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꼬박꼬박 월세를 받아가기 시작했다. 땅주인은 월세가 하루라도 밀리면 문에다 자물쇠를 채우고 보초까지 세우는 인정머리없는 서아시안이었다. 때문에 이삭같은 청장년들은 어떻게해서든 지 돈을 벌어와야 했으며 교육을 받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워낙 유럽인들이 많이 정착해있는 터라 웬만한 생활영어는 귀에도 입에도 익어있는 상태였다. 라디오뉴스도 영어였고 시내의 가게에서도 영어를 쓰지 않으면 무시를 당했다. 머리가 좋은 이삭은 눈치로 영어를 익혔고 감으로 지리를 알았다. 덕분에 그는 한 인디언은행의 지점장에게 발탁되어 그의 운전기사노릇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그가 '하나님,내 얘기 좀 들어보세요'를 시작한 것은.

 

 서아시안들은 유러피안 다음으로 아프리카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는 종족이다. 그들은 몇 대에 걸쳐 이 지역에 삶의 터전을 심었고 크고 작은 상권들을 장악했으며 아프리카의 추장족들인양 새로운 계층군을 형성하고 있으면서 이제는 스스로를 아프리칸이라 거리낌없이 부르고 있다.

 

이들은 또한 굳건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종족번식력으로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벌써 아프리카의 상당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상태가 너무나 오래 지속되다보니 현지인들인 흑인들조차도 제 온전한 문화의 빛깔을 잃어버리고 서아시안들의 옷차림- 여자들은 눈만 내놓고 온몸을 칭칭 감는 차도르, 남자들은 발뒤꿈치까지 오는 통원피이스 -을 즐겨 입는다. 어떤 남자들은 터키인들의 붉은 모자도 아주 익숙하게 쓰고 다니며 카슈미르여인들의 숄이나 인도지역의 배꼽만 내놓는 고전의상을 마치 제 문화인양 즐겨 입고 다닌다.

 뒤에서 보면 꼭 서아시안같은 흑인들이 많다. 서아시안이나 유러피안들은 아프리카 안에서만큼은 신기하게도 '동류의식'의 성향을 나타낸다. 그들 서로는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도 정작 흑인들이 사는 흑인들의 나라에서 절대로 흑인들을 자신들의 계층군에 끼어주지 않는다. 가진자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철옹성같은 그들의 군에 끼일 수 없다.

 

 

 

   이삭의 주인은 서아시안중에서도 인도인이다. 더군다나 깐깐하기로 소문난 은행업에 종사하고 있는 데에다가  이 지역에서는 상류층에 속하는 상당한 가문출신이다. 이삭은 부자일수록 인색하며 서아시안일수록 특히 현지인들에게 냉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주인은 힌두교도이지만, '억수로 똑똑한' 이삭은 자신의 종교적 견해에 대하여 주인에게 함구할줄도 알았다. 주인의 출퇴근길과 주인의 아이들의 등하교길 그리고 주인의 아내의 저녁시장길을 책임지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였다.      그들을 위해 일하는 동안에 이삭은 같은 콤파운드 안에 나란히 지어진 이웃집의 하인과도 알게 되었다. 그집 하인의 이름은 너무 길고 발음하기 어려웠지만 -그는 인근의 다른 아프리칸이었다- 대충 이름 길이가 일 미터는 되는 것같았는 데 다들 그를 그냥 '키마니'라고 불렀다.

 

   이삭은 아직 이웃집의 주인들을 본적이 없다. 키마니의 얘기로는 꼬레안들이라고 했다.

 

 '뭐 또 고만고만한 까탈스런 아시안들이겠지요 하나님.'

 

그는 어느 새 신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주변잡기들을 꼬박꼬박 일러바치는 버릇이 들어있었다. 워낙 신경질적인 그의 주인에게서 받는 심리적인 불편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뚱뚱한 백인 목사님도 그의 갑갑함만은 어떻게 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 예배를 보는 일이 아니면 여간해서는 교회근처를 지나다니지 않고 있다.  어쩌다 교회근처로 주인의 심부름이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우회도로를 이용해 볼일을 보곤 한다.

 

덩치만큼이나 달덩이같이 동그랗고 커다란 백인 목사님의 눈동자는 그의 심장을 꿰뚫을 것처럼 투명한 푸른색이다. 자신으로 하여금 지은 죄도 없이 공연히 움츠리게 만드는 색깔이 바로 하늘같은 푸른 색이란 사실도 그를 통하여 비로소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러니까 푸른 색은 하나님이 특별히 이뻐하시는 색일거야'

 

  '무진장 영명한' 이삭은 가끔은 이런 엉뚱한 생각까지도 하곤 했다. 다행히 그의 인도인 주인은 그에게 자신의 은행경비들과 같은 푸른 색의 제복을 입도록 했다. '신이 특별히 이뻐하시는 게 틀림없는 푸른 색의' 제복을 몸에 걸친 순간 그의 가슴은 '위대한 선민의식'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요렇게 조렇게 암만 흠을 잡을래도 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푸른 색깔이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백인 목사의 눈동자만큼이나 시원하게 하늘을 담아낸 색깔이었다. 공연히 가슴을 쓸어보았다. 뿌듯함이 절로 일었다. 백인 목사가 하던 찬송을 자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축도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입에서는 설교가 좔좔좔 쏟아져나올 것만 같았다. 이삭은 누런 테이프로 벌어진 틈마다 덧이어 붙인 침실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중얼거렸다.

 

" 하나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아 글쎄, 글도 모르는 제가 목사님이 되고 싶어졌지 뭡니까요..

  헌데 저는 하나님도 알다시피 글도 모르고요.. 길도 모르거든요..

  좀 도와주지 않으시렵니까요? 저는 돈도 벌어와야 하거든요.. "

 

  그 다음날 아직도 달빛이 어둠 위에 덧칠해져 있는 흰새벽에 '느닷없이 신실해진' 이삭은 목사관저를 방문했다. 그리고 자신이 매일 저녁 퇴근 후에 한 시간 씩 성경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느냐고 물었다. 언제나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백인 목사는 그 푸른 눈동자를 더 푸르게 반짝이며 말했다.

 

"되고 말고요.

 난 어젯밤부터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3

 

 

키마니는 석달에 한 번씩 인간적인 불평등을 겪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싫었다. 이 나라에서는 석달마다 비자를 찍고 있는 데 유러피안이나 아시안들에게는 넉넉한 인심을 보이던 관리들도 키마니처럼 같은 피부색의 아프리칸에게는 까탈을 부린다. 뒷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인의 월급이 얼마라고 그들에게까지 쪼개어줄 돈이 그에게 있을 턱이 없다.

 

키마니는 불법취업자다. 그들도 그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공연히 경찰이 심문을 한다. 여기서는 무작정 서에 같이 가자고 하지 결코 길에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같은 흑인이라도 저들이 보기에는 그 생김생김의 다름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 취조받은 자의 주인이나 본인이 요구한 돈을 내지 않으면 하루고 일주일이고 유치장에 가둬놓는다. 그러면 어떤 주인들은 그달치 월급에서 제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냥 제 주머니를 털기도 한다. 키마니도 벌써 그런 경험이 대여섯 번은 있다.

 

  제 나라가 살기 어려워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키마니는 그래도 스스로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시절부터 남의 집살이를 해온 경험이 경력으로 인정된 것이다. 그의 새주인들은 꼬레안들인데 그들의 이웃들처럼 하인에게 세탁과 청소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음식까지도 완전히 다 해내주기를 바란다. 게다가 월급도 이웃집 운전기사인 이삭만큼 후하게 준다. 이 나라에서는 운전기사월급이 제일 좋은 편이고 그 다음으로는 하인이다. 때문에 키마니도 언젠가는 운전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번은 이삭에게 자신의 포부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 남자라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배포가 있어야 해, 키마니.

  나는 언젠가는 신의 말씀을 전파하러 세상 밖으로 나아갈 것이네.

  원한다면 자네도 붙여주기야 하겠지만, 그 전에 자네는 먼저 자네에게 푸른   제복을 입혀줄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할 거야. 그걸 '준비과정'이라고 부르  ."

 

  얼마 전부터 이삭은 부쩍 유식한 말도 많이 쓰고, 어깨에 엄청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마도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기 시작하는 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