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모처럼 햇살이 참 화사 합니다.
헤아리니 이 봄은 아버지가 맞으시는 칠십 다섯 번째 봄이 됩니다.
돌이켜 보면 아득하면서도 또 한편 일장춘몽같은 감회 어린 아버지 세월이 되겠지요.
전쟁과 가난과 혼돈의 간단치 않은 역사 속 소용돌이가 아버지 사신 세월이라 하면 맞는다 생각 됩니다.
혈육 한점 함께 동행 하지 못한 외로운 실향민이 아버지이십니다. 하기에 남들에겐 그야 말로 그냥 남의 얘기인 남북 이산 가족 상봉이 우리 가족에겐 피부로 닿는 우리 얘기가 되는 거고, 이슈로 떠 오르는 작금의 전쟁 영화가 사실 그대로 아버지 얘기가 됩니다. 그런 회오리의 세월에서 그래도 아버진 결코 나약 하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 하듯 아버진 낯선 남한 땅에서 격정의 세월을 딛고 일어나 터를 일구고 삶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뿌리를 내리셨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외로움이 뼈에 사무쳤을 아버지에게는 당신의 피와 살점인 자식이 얼마나 애틋했을 터인데 우리 자식들은 그 걸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니 모르는 척 살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도 불혹을 훌쩍 넘기고 난 어느 날 문득 내 삶의 무게가 버겁다고 생각되어 졌을 때, 새삼 아버지의 유구한 세월에 경외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두 아이 키우다 숨가쁘다고 느낀 어느 날 문득 그 배가 되는 우리 4남매 키워 내신 아버지의 저력이 존경스럽다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다)이란 말이 부끄럽고 젊은 사람 무색하게도 아직까지 경제 일선에서 불퇴전을 보이시는 아버지의 꺼지지 않는 정렬이 참으로 놀라웁다 그리 생각도 합니다.
가족이 모여 술 자리를 마련하고 혹은 함께 여행하고 등산을 하여도 아들 사위 어느 자식 통틀어 아버지를 능가할 이 없다는 사실은 그저 감탄 일 뿐입니다.
이러하기에 아버지를 떠 올리면 우선 강인 하시고, 꼬장 하시고, 검약 하시고.......그래서 어느 한 구석 틈도 없다 그리 됩니다.
덧붙여 늘 아버지는 베푸는 입장이고, 자식은 받는 입장으로 그 역할은 불변하다 그리 살았습니다.
받는 사람 속성이 그런 것처럼 받으면서도 난 늘 부족 하다고만 합니다. 사랑이든 물질이든 내게 왜 이리 인색하시냐고 지치지 않고 불평만 합니다.
아버지, 제가 22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았으면서도 말입니다.
자식에게 무리한 요구와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네가 부모 맘 어찌 알겠느냐' 억울해 입술 깨무는 날 허다 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어제 제가 뵌 아버지 모습은 왜 그리 생경했는지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틀니를 빼 놓은 아버지 입 속에 아랫니가 달랑 한 개 뿐이라는 사실이 놀라운 것은 말 할 것도 없지만 그 동안 가지런하다고만 보아왔던 아버지 치아가 거의 의치였다는 사실을 나는 왜 몰랐던 것 인지 참 기막혔습니다.
새로 맞춘 틀니가 적응이 안 되 입술은 다 부르트고 음식 한 톨 입에 넣어 씹을 수 없어 며칠을 굶다시피 하셨다는 앙상한 아버지 모습은 완연하게 병든 노인이셨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아버지, 어젠 분명 아버지가 방심 하셨어요. 실수 하신 겁니다.
아무리 불시에 들이닥친 딸의 방문이었지만 그렇게 흉한 모습을 제게 적나라하게 보이시다니요....
평소 아버지 답지 않으셨습니다. 측은하고 민망한 모습은 절대 아버지 모습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아버진 그냥 자식의 연민이 필요없는 그런 강한 아버지로 살아 가셔야 되는 거 맞습니다. 영원히 청춘의 심상으로 기개있는 모습이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영원히 아버진 아버지 일 뿐, 지금까지 감지하고 살았던 아버지의 무게를 덜어 내기 싫습니다. 이제 와 새삼 내가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해 드려야 할까 고민 하는 거 저 그거 안 할 랍니다.
행여 딸자식 불효로 남겨 놓을까 부모 맘에 그 것이 걱정되어 노환을 기회로 삼으라 하신다면 오산인 줄 아셔야 합니다. 제 몫은 그냥 불효일 뿐입니다. 그것만이 제 역할일 뿐입니다.
아버지, 우수가 지나고 얼음이 깨지면서 동면의 모든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이 축복받은 봄의 한 날이 바로 아버지 생신이십니다. 아버지가 시들지도 퇴색 하지도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충분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전 늘 이렇게 아버지에게 투정과 협박이나 하면서 그리 살 겁니다.
주고 또 주고 뼛 속 진액까지 다 주셔도 전 흡족하다 안 할 겁니다.
그저 틀니로 잇몸 감추듯 그리 감추면서 제 앞에서 절대 약한 모습 보이지 마소서.
제가 아버지 앞에 '사랑 합니다' 그 맘 고백 할 용기를 내는 날 까지 주저 앉지 마시고,
제게 효도 받을 날 만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 내소서.
그리하면 영원히 사시는 길이 됩니다.
헌데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나 잠은 합쭉한 아버지 모습에 밀려 천리 만리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웅얼웅얼 불러 봅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런데 가증스럽게도 거푸 아버지를 부르니 눈물이 고입니다.
한 번도 아버지를 위해 흘려 본 기억이 없는 눈물입니다.
그저 전에 없이 가슴이 아릴 뿐입니다.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옆에 계신다는 사실이 왜 새삼 고마워야 하는 지도 낯설고,
자꾸만 소름 돋는 생각의 꼬리는 도대체 무얼 의미 하는지도 당황스럽습니다.
행여 한 장 서신이면 이 오리무중이 벗겨 질까 싶었는데 그도 아닙니다.
오히려 횡설 수설이 더욱 심기만 어지럽힙니다.
허나 지우지 않으렵니다. 내 품에 난생 처음 아버지를 끌어 안고 한 밤을 꼬박 밝혀 보았습니다.
올해 아버지 생신에 저는 이 편지 한 줄을 그 흔적으로 올릴 뿐입니다.
하여 내년에도 후년에도 내 나이 일흔 다섯이 되어도 이렇게 아버지를 부르며 편지 한 줄 올리기를 희망 하겠습니다.
허니 언제까지라도 대답만 하여 주십시오.
영원히 저는 부르고, 영원히 아버지는 대답하시고......그리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