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188

내 어머니, 내 새끼, 어머니의 아들


BY 土心 2003-10-17

一.어머니

며칠 전 제사가 있어 큰 댁에 갔다.

큰 댁이라야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고

거기엔 어머님도 계시기에 맘만 먹으면

하루  열두번도 다녀 올 수 있는 시어른 댁이다.

근데 이 괘씸한 막내 며느리는 무슨 행사나 있어야 빼꼼이 얼굴 내민다.

핑계야 그럴 듯 하나 핑계는 핑계일 뿐 맘이 없기 때문인 건 뻔한 사실이다.

올해 시어머니 연세가 89세이다.

정말 만만찬은 세월을 용케도 잘 살아 내셨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노인이나 그 어른의 촌기와 기억력은

감히 젊은 사람도 못따라 갈 그런 양반이시다.

그런 분인데, 제사상 물리고  식구들끼리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을 참에

뜬금없이 내게 물으신다.

"내 나이가 지금 몇이냐? 몇살 먹은겨?"

"어머니...갑자기 왜?"

몇 번을 물으 셨고, 몇 번을 반복해서 가르쳐 드렸고...

몇번을 반복하며 외시고, 그러다 또 묻고...

"어머니, 누가 물어 얼른 생각 안 나심 애쓰지 마시구

그냥 먹을 만큼 먹었슈~ 하고 대답하세요."

아무리 궁여 지책 이라지만 내가 생각해도 어이 없는 대답...

참 기막혔다.

어머님의 한숨이 방바닥을 뚫는다.

당신이 천치가 다 됐다는 눈물 섞인 한탄이 

이미 짧은 시계 바늘을 한바퀴 돌려 놓고 있었다.

'노인네 저 상실감을 어쩌누...어떤 말로 위로가 될 까....'

그 와중에 이 철딱서니 없는 사람 입에서  또 다시 낼름  쏟아진 말이

"어머니, 저두요 누가 내 나이 물음 얼른 생각 안나요. 그냥 잊고 사세요"

그리고도 모자라 몇 마디 더 덧 붙였으니.. 오호 통재라!

내가 오늘 왜 이러나.

'하지만 어머니, 전 틀림없이 그 때 울고 있었습니다.

가슴속으로 그 눈물 밀어 넣느라 입이 경련을 일으킨 거랍니다.

어머니~ 어머니~어머니~ 가여워 어쩐 답니까'

 

二. 내 새끼

어제 모처럼 뚱땡이 우리 딸이 함께 찜질방 가잔다.

별로 찜질방 체질이 아닌 지라 일 없이 갈 일 없는데,

딸의 데이트 신청이 너무 좋아 얼른 나섰다.

중2짜리 아들과, 대학 2년차 우리 딸,

아빠 빼고 셋이 한 찜질방에서의 데이트는 환상적이었다.

이 녀석들이 땀을 뺄려고 온 건지,

엄마 껍질 벗길려고 온 건지...

빼는게 한 컵이라면 먹는 건 한 되였다.

저래가지고 다이어트는 무슨...?

엄마 품을 파고 들고, 온 몸 구석 구석을 부비고

그러고도 모자라 어리광에 응석에 별 짓을 다 한다.

땀나고 덥고 끈적끈적하고..."아이구 인 석들아 저리가!"

그런데 왜 싫지가 않은지.

싫기는 커녕 왜 이렇게 좋기만 한지

고슴도치 사랑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고, 이왕 내친거

못난이 두 녀석 재롱에 난 아예 이성을 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사정없이 정 다 퍼주고, 그야말로 홀딱 벗고 다 주는데

저것들 이담에 남의 사람 어찌 만드나?

아까와서 어찌 뺏길거나...?

그 순간 갑자기 이런 심통 맞은 생각은 왜 해야 한는 건지

내가 하고도 내가 어처구니 없어 웃었다.

 

三, 어머니의 아들

우리 엄니에게 내 남자는 적어도 그만큼 소중했을 거다.

나에게 뺏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25년째 뺏기고도 서운타 말 한마디 못하고 사신 분이다.

그런 어머니가 세월을 자꾸 놓으시려 한다.

내 남편 나 첨 만나 내게 던진 질문이

"막내는 어머니 사랑 받을 시간이 다른 형제들에 비해  짧으니

결혼 하고 내가 어머니 모시고 살아도 되겠소?" 였다.

그 효심이 밉지도 않았거니와

그 때 그건 이룰 수 없는 허약이 될 거란 걸 짐작할 수 있었기에

두번도 망설임없이 찬성의 내숭 카드를 내 보였다.

남편과 난 그 날 이후 서로의 눈에 콩각지를 붙였고

그래서 지금까지 한 이불속에서 산다.

그런데 내 남자가 된 그 어머니의 아들은

아직도 어머니를 우리 집에 모셔 오지 못했다.

아들 놈 소용 없다는데  이 아들 보니 참말인가 싶다.

어젯밤 난 어머니 아들에게 25년 전  내게 받았던 그 다짐을 상기 시켰다.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니 잊고 살았음에 틀림 없다.

식은땀까지 흘리는 걸 보니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것이 분명 했다.

......

나도 내가 어쩔려구 그런 말을 했나는 모르겠다.

앞뒤 생각도 이유도 없다.

그냥 맘이 시키길래 말을 뱉았다.

더이상 재고 따지고 머리 굴리고....

이미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만 알 수 있다.

행여 어느 날 갑자기 

이사 가실 보따리 꾸리신다 하면 어쩌나?

말려야 하나... 도와 드려야 하나?

빠뜨린 것 있음 챙겨 드리고,

쓸데 없는 것 꾸리셨으면 버려 드리고.

그렇게 외롭지 않게 옆에 있어 드리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

어머니 귀한 아들  훔쳐 이 만큼 등골 빼먹구 살았음

마지막 양심 한자락 내 놔야 도리일 거다.

그래야 도리일 거다.

 

"할머니 지금 몇이시우?"

"내 오래전에 세월 묶어 났더니 이젠 더이상 안 먹읍디다 . 나 청춘이우."

그렇게 오래 오래 맑은 청춘으로 사셔야 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