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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살랑살랑 (이야기 3)


BY 명자나무 2004-02-17

두 달에 한번씩 머리 손질해주는 봉사가 있다. 꼭 참여해야 하지만 봉사활동이 있을 때 이러저러한 핑계거리가 생겨 자주 빠지곤 한다. 아직 마음이 성숙하려면 멀었나보다.

오늘은 부석마을이다. 봉사자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이 집 저 집 다니며 머리를 감겨 드리고 깎아드려야 한다. 나이가 많거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장애가 있으신 분들이 그 대상이다.

가난한 시골이라고 들었는데 그리 가난해 보이지 않는 것은 초록빛 넓은 들판 때문인가보다. 너른 들판에 드문드문 노인들이 허리 굽혀 일하시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평화롭게 보인다.

100살이나 되신 할머니의 머리를 손질하는데 주문이 까다롭기도 하다. 총기도 좋으시고 정신이 또렷하시지만 그래도 얼굴 군데군데 검버섯이 피었고 살갗을 만져보니 딱딱하다. '사람도 오래되면 늙은 나무등걸 마냥 거칠고 두껍고 딱딱해지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해져 공연히 얼굴을, 손을, 자꾸 쓰다듬어 드렸다.

일이 끝나고 할머니가 주신 음료수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들판길을 걸었다. 바람의 감촉이 너무나 부드럽다. 어느 애인의 손길이 이리 조심스럽고 나긋나긋할 것인가! 봄바람에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릴 듯하다. 혼자서 시골길을 이렇게 아무 욕심 없이 걸어보았던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집집 앞마당과 대문 옆에는 노란 색이 열에 들뜬 듯, 함성을 지르는듯 강한 햇빛과 어우러져 눈이 부시다. 수선화가 그렇게 무더기무더기 마당을 물들이고 있었다. 봉사한다고 나가서 눈으로 마음으로 맘껏 숨을 쉬고 오,니 해드린 게 흙 한줌 이라면 얻어온 건 높고 푸른 하늘과 휘휘 돌아다니는 바람과 내려 쬐는 햇빛이다.

오는 길에 대문 앞의 수선화 꽃에 감탄을 해대니 한 무더기 파주셨다. 그걸 여러 화분에 나누어 심었더니 집안 곳곳이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아마도 나는 저 수선화가 질 때까지 너른 들판과, 그 들판을 거칠 것 없이 휘돌아 다니던 봄바람과 거기 내리꽂히던 따갑던 햇살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봄은 수선화의 노란색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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