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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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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수 없는 내가 다행입니다


BY 가시나무 2003-10-30

바람조차 잠이 들었는지 밖이 너무 조용해서
가슴이 조여 드는 이른 새벽입니다.

초저녁에 살풋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길 수 차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보니 새벽 두시.
더운 물로 샤워를 하고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 동안 밀렸던 일을 좀 하리라 맘을 먹고
컴을 켜고서는 언제나 처럼 인터넷 사이트를
누빕니다.

부질없는 안부가 오고 가는 채팅사이트에서
습관처럼 머물다가
초점없는 눈동자로 비실대는 자신이 싫어서
도망 나오듯 빠져 나왔습니다.

누군가의 것을 탐낸 적이 없는데
그저 내가 가진 것만으로 행복하고자 했었는데..

누군가의 것으로
모자라는 내 것을 채우고 포만의 트림을 토해내는
탐욕이란 벌레를 키우지 않았었는데..

이젠 변하고 싶습니다.

차가운 이성은 거부의 몸짓을 발악하듯
내지르고
끓는 감정이 사주하는 나는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제 변하고 싶습니다.

아흔에 아홉을 다 내주어도
단 하나 남은 내 것에 대한 소중함으로
죽는 날을 맞고자 했었습니다.

구멍 난 가슴에서 새는 바람은
폐부를 가르고
더 이상의 뺏길 것이 없다는 낭패의
한숨이 들어난 내장 사이로 흐릅니다.

이제 나는 변하고 싶습니다.

탐욕의 기름기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혐오스럽다는 생각은 치우기로 했습니다.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깨진 두 무릎의 상처가 차가운 이성을
멈추게 합니다.

감정이란 놈이 사주하는 곳으로
가보려 합니다.

기도할 수 없는 내가 다행입니다.

 

 

1999년 11월 어느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