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폼만 잡던 하늘에서 후두둑 비가 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 퍼붓는 비를 보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 아래층으로 내려 가니
오랜만의 비에 몇몇 동네 사람들이 입구에서 비 구경을 하고 있었다.
깜짝비에 소리를 지르며 내달르는 아이
어디서 구했는지 박스를 머리에 쓴 남학생
옴팡 다 젖었는데도 흥얼거리며 걸어가는 나름대로 멋있어 보이는 총각
뎅그러니 정차되어 있는 차의 옆 유리창이 닫혀지지 않았는지 옆의 경비 아저씨는
계속 걱정인데
통장 아줌마는 "그 놈도 비 좀 맞게 놔 두셔"
오랜만에 퍼부은 비에 다들 들떠 보이기도 하고.
아침에 분병히 우산을 챙겨 갔으리라 여겼던 딸이
가방을 앞으로 한 채 저만치서 오고 있었다.
그 깜짝 비는 어느새 그쳤지만 아이의 한 쪽 어깨는 뚝뚝 물이 떨어지고
교복에 가방을 앞으로 한 모양도 어설프지만
볼이 발갛게 상기된 그 모습이 더 우습기도 하였다.
학교 사물함에도 우산을 한 개 여분을 보냈었는데
우산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옆동의 친구것을 같이 쓰고 왔으니 걱정 말라고만 그런다.
엄마 마음이 어디 그런가.
딴 이야기 하다가도 우산 이야기로 슬쩍 넘겨 물으면 사물함에 있다고만 그러고
실실 웃다가 결국에는 말을 하는데
어이쿠...지 아빠 딸 아니랄까봐..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막 쏟아지더라나
사물함에서 우산을 챙기는데
학교에서 집이 먼 친구도 우산이 없다고 그러고
마침 옆 동의 친구한테 물어 보니 같이 쓰고 가면 될 것 같아서
그애한테 얼른 주고선 둘이서 그 비에 붙어서 오느라
비에도 젖고 땀에도 젖고
"울딸이 착하기도 하네.."
그렇게는 말했는데
속으로는 남편이 생각 나는 것을 보니
나도 어지간이 그런가 보다.
별말이 없었던 열 다섯, 여섯 그 무렵
갑자기 이렇게 비가 쏟아진 날이 있었다.
물론 울엄마의 성화에 우산은 가방에 있었지만
버스에서 집까지 그 거리를 비를 맞으며 걸어간 적이 있었다.
왜 그 흔한 연애 소설에는 꼭 그런때면 누군가가 우산을 씌워 주더만
하다못해 옷이라도 덮어 주더만
아무래도 그날의 행색이 산발한 여학생이 칠칠맞게 뛰지도 않고
투벅투벅 걸어가는 폼새가 영 아니올씨다 였겠지.
그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아,난 왜 살아가고 있는가!'
였을것이다..우습지만서도.
걸어가는 사람도,웃고 있는 여드름쟁이 머시마도
골목에서 눈 마주치면 도망가던 그 머시마도
얼마나 한심하던지.
저 사람들은 왜 사는 것일까....그랬었다.
그런데
생쥐 꼴을 하고 집으로 가서는 울아부지한테
얼마나 혼이 났던지..
언제 철이 들거냐고..다 큰기 왜 그카고 다니냐고...
아부지가 내 속을 아셨다면
철이 언제 들거냐고는 안하셨겠지....ㅎㅎ
엉성하게 가방을 앞으로 매고 오는 아이를 바라보며
그 철이 이상하게 들었던 그 때의 내가 보이는 듯하였는데
막상 친구에게 빌려 줬다고 하니
옆의 사람들에게 밀려 사는 남편이 겹쳐 지면서 확 깨는 것은 왠 조화 속인지.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주절주절.....
장마가 시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