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는 휴일도 없이 학원을 가고
점심끝에 몰려드는 들쩍지근한 눈꺼풀에 밀려
우리 부부는 쇼파에서 몇 시간을 잤나 보다.
오후의 기다란 햇살이 발치께를 덮을 무렵
퉁퉁 부은 얼굴로 깨어난 남편과 나는 그저 멋적게 웃고 말았다.
점심에 먹은 짬뽕과 자장면이 두덕두덕 어느새 붙어 버렸는지
둘다 얼굴이 훤하다 못해 부옇게 보일 지경.
오랜만에 영화라도 볼 참에 다 늦은 저녁인 것도 잊은 채 나가는데
아이가 올 시간은 임박하고
맥없이 매표소에서 시간만 줄줄이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다.
오늘만 날인가...
경기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뉴스에서만 나오는 말인지
영화관과 인접한 백화점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바지도 필요 하고
편하게 입을 윗도리도 좀 그렇고
뭣이라고 계속 궁시렁거리는 남편을 이끌고
매장마다 들어가면
선뜻 살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팔짱만 낀 채 심드렁한 그를 보니
그럴바엔 말을 하지나 말지.
매장을 비껴 지나면 또 그런다.
바지가...그렇지..점퍼라도....
그러면서 내 옷을 고르라고 한다.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나야 뭐 그리 옷이 필요 할까나.
성큼 앞장을 선 그이는 몇개를 집더니 어떠냐고..
팔장을 낀채 좀전의 그처럼 나도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다른 매장에서 아이 교복안에 입을 검은 폴라만 하나 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버렸다.
몇해 전에만 해도
철마다 입고 싶은 옷도 많았고
유행의 끄트머리라도 서고 싶어서 이것저것 관심도 가지곤 했었는데
어느날인가 부터는
여성용 매장은 고사하고
그저 남성복이나 아이들 매장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남편을 보니
언제 내 즐거움을 베꼈는지.
근 알고 지냈는 세월이 이십여년이 되어가는 그와 나
지겹게도 싸우고
징그럽게도 보기 싫더니
희끗거리며 눈발이 서성거리는 머리에서
중년의 둥시그리한 배 둘레까지
먼발치에서 어슬렁거리는 폼새만 보아도
내 옆사람임을.
우린 어느새 익숙하게 닮아가고 있었구나.
출근하는 옷 매무새를 보아 주면서
그래.....
감사하고...이 마음도 변하지 말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