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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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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시간이 흐른 뒤에.


BY 다정 2003-11-10

8층에서 내려다 본 거리는 노란빛에 내내 잠겨 있다.

계절은 바쁘게 제 할일을 다 한듯이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고

그에 이끌려 터덜거리며 나간 세상은 또다른 무언가에 빠진 이들처럼 들떠 보인다.

 

왁자한 음악이 전층을 끓이듯이 울려 퍼지는 쇼핑몰은

그야말로 사람들의 물결이다.

털스웨터에 털모자가 푸근한 맛을 더하고

두툼한 점퍼도 주인처럼 행세를 하여도 거슬리지가 않다.

어느새, 그렇게 되었을까.

 

시장통에서 마주 오던 아는 이를 만났다.

그전에 살던 아파트의 아래층 엄마, 반가움에 팔을 잡으니

그이도 같은 마음으로 연신 웃기만 한다.

 

얼떨결에 집을 처분하고

그 집의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값을 달리할 때마다

그 집을 산 새댁을 생각했다.

천정부지로 값이 뛰어 돈벼락을 맞았을 그 새댁.

서울의 반지하 셋방에서 여름이면 물난리를 겪었고

알음알음하여 이곳의 지역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앞으로의 투자성을 알뜰하게도 엿보고 우리집을 산다고 하였을때

내심으로는 '난 저 나이에 뭐 하였나'를 생각하게 한 새댁이었다.

그리고는 그 집과 그 새댁을 잊고 지냈었는데

우연히 듣게 된 그 집의 이야기는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시동생과 같이 살면서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이사오고 얼마후 부터는 그렇게나 싸움을 하고

동네가 난리가 아니었다나.

결국은 몇달 되지 않아 이사를 가 버렸다고.

그 부부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고

근 7년을 보낸 예전의 집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집으로 변해 버렸다.

 

생머리를 가즈런히 묶은 그 새댁의 얼굴이 떠 오른다.

집을 계약하고 새댁의 눈빛이 마음에 들어 점심을 사주었었는데.

열심히 살려고 하는 그 마음이 참 예뻐서.

이사하는 날에는 보일러실의 창문에 메모를 남겨 두었었다.

...제일 맛있는 자장면 집 번호

...보일러 청소 하는 요령

...시장 위치와 병원 위치

 

어설프게 보내 버린 신혼의 서글픔과 아픈 기억때문에

그 새댁을 통한 나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는지도.

 

어느날 세월이 흐르고

지나간 기억 속으로 신혼의 토닥임을 기억할때 쯤이 되면

그 새댁도 그 집에 대한 여러가지들을 생각하겠지.

처음으로 장만한 집이었으니.

얼마나 기뻤었는지.

그러고는 서로를 감싸안지 못한 그 짧은 마음도.

 

가을이 또 이렇게 멀어져 가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