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을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해 전 일이다. 그만큼 살림과 생활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무늬만 주부였다. 보기에도 알뜰함이 묻어 나오는 친구가 있다. 물론 혼자 북치고 장구 쳐본들 폼이 안나게 마련이듯 그 집 남편도 저금에는 가히 놀랄만한 '꾼'으로 보일 지경이다. 예를 들면 형제가 집에 놀러 온다고 하면 그집 식구는 핑계를 되고선 얼른 저녁을 먹고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 9시경에 집으로 오라고 한다. 식사 대접하는 비용이 아까워서. 다달이 나가던 어떤 돈이 기회가 되어 다음 달 부터 지불하지 않게 되면 그만큼의 일정액을 적금을 넣는다.어차피 없어지는 돈이기에.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놀라워라'를 속으로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른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 친구랑 같이 은행을 가게 되었는데 그 날도 아마 그 친구는 새 적금 통장을 만들었던 모양. 무심히 잡지를 뒤적이던 나에게 아마도 그때에 백만원정도 모으는 그런 적금을 같이 들자고 그랬나 보다. 그것이 나의 적금의 시초가 되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적금을 듦과 동시에 생활이란 힘겨움이 시작되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가사의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솔직히 돈을 아무리 쪼개고 이리 맞추고 저리 짜집고 한들 그 돈이 닭알이 아니기에 날마다 불기만 하랴. 몇번의 판을 뒤집다 시피하고 이사를 다니고 집안끼리 감정적인 앙금을 만들기까지 내가 부은 적금은 보이지 않은 힘이 되었다. 푼푼이 몇 만원 정도로 하나의 끝을 볼때가 되면 용케도 '돈'의 'ㄷ'자는 벌써 나갈 채비를 서둘렀고 흔하게 하는 아파트 재태크는 꿈도 못 꾸었지만 그저 답답하게 금리가 어떻다 한들.돈가치가 어쩌고 해도 조금씩 모으는 나만의 재미는 입안에 침이 다 고일 정도였다.
그런데. 아무리 나혼자 십원을 넣고 천원을 모으면 뭐하나. 남편은 천원을 주머니에 넣고 만원을 남들과 같이 쓰는데. 몇 년 동안의 내 딴주머니의 속 알맹이는 남편의 같은 주머니의 알토랑이 되었고 다급한 일이 닥치면 오후 쯤엔 전화가 온다. 얼마쯤 준비 할 수 있냐고. 그 일도 한 두번 하다 보니 이력이 붙었는지 누구네 사돈에서 부터 알지도 못하는 아무개의 이름을 내세워 돈을 빌렸다 하곤 또 내 돈을 내어 주었더니 여름에 고모가 왔을때 거실에서 두 오누이가 나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울 마누라가 말야. 자기 돈 주면서도 누구 아지매 돈이라 하는데 ......"
결론은 이젠 빈털털이가 되었단 이야기이다. 여전히 부부가 아끼고 저축하고 되도록이면 더 아끼는 친구네는 아마도 통장의 잔고는 배가 꽉 찰 지경이겠지만 혼자서 딴주머니에 마법을 걸고 돌아보면 돌이 된다라고 주문을 외운들 돌이 되어도 열어 봐야겠다는 남편의 허방한 폼새에는 모래가 되어 버렸으니 심히 아쉽기도 하지만 만약 그러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적은 비자금이었지만 때마다의 일차원적인 처방으로 인해 그 상처가 덧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을까 자위 해 본다.
(서랍속에서 발견한 지나간 내 적금 통장을 보니 만기됨을 '쾅쾅' 도장으로 알려 주었던 그 날짜가 아직도 두근거림으로 설렌다.
다시 또 한 번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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