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궁마마가 될 것 같아,잘 될거야 그치?"
어쩜 좋으니 언니야......
터울이 6년이나 되는 언니가 있다. 자라면서 얼마나 많이 싸웠던지.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에는 언니 갈래머리 묶어 주느라 티격거리고
대학 다닐때엔 학교 행사때마다 언니는 용케 알고 맹장을 앓거나
이가 부러져 오거나
그저 언니 간병에 내 시야를 잡아 두곤 했지.
다른 언니들은 나이차도 많고 각자의 직장 생활에 밑에 우리랑은 거의 어울리지 못하고
막내인 나랑 위에 언니는 그저 엮이고 설키며 그렇게 우리의 이십대를 보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 다음해에 같은 과의 복학생과의 결혼 이야기가 있었을때
언니는 많이 반대 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지 않냐고.
멋모르고 언니를 제치고 결혼을 했을때
미안함 감도 있었지만 그러고 사는 줄로만 알았다. 이 철부지는.
일년 후에 언니가 결혼을 하고
아이 키우는 이야기에서 부터
남편 흉보기
시댁의 모든 시시콜콜한 속상함까지 우린 함께 했었다.
우여곡절을 거듭한 살림이 곤두박질을 거듭할때마다
그저 안타까움에 언니는 모든 것을 내어 주었고
이제 조금은 안정을 한 동생이 그저 좋아서 같이 즐겁게 살자고 했는데.
배의 통증에 검사를 하고 서로가 먼 타지에서 걱정반 두려움반으로 나눈 전화로
자궁을 들어 내야 할 것 같다고 그러는 것이다.
"야 ,내가 자궁만 없냐? 맹장도 없지.애도 제왕절개 했지.수술도 이제 길이 난다 그쟈?"
되지도 않은 농담으로 수술날을 기다리며 괘찮아,그래 괜찮을 거야.언니야.
엊저녁 늦게 입원을 하면서 까지 수화기 너머로만 위안을 얻고자 했었다.
언니 말마따나 이제 나이 든 여자가 자식도 낳고 했는데
자궁이 무에 그리 대수겠냐고.
걱정이 있으면 시간이 미리 알고는 느리게 가기 마련
아침부터 초침까지 세며 기다리다
결과를 알고 싶어 전화를 하니
다행이 난소와 나팔관만 잘라내고 자궁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수술은 잘 되었다는
형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아, 감사합니다.
그저 나이만 들어 가면 얼마나 좋을까나.
늘어가는 주름도 나이에 맞게 자리 잡고
은근한 살집에 투정도 부리고
자식 다 소용없다란 소리도 하면서
그러고 늙고 싶다.
하나 둘씩 아픈 곳이 생기고
걸려오는 전화 너머로 기운 딸리는 목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나이듦이 무섭기만 하다.
몇 평 되지 않는 방 한 곳에 누워서
겨울 밤이면 사다리 타기를 하여 아이스크림을 사 먹던
그 시절의 우리들은 어디에 있을까.
한 이불에 네 자매의 몸 들어 가기도 벅차던
연탄 보일러의 그 온기도 아스라하고
그저 전화로만 안부를 묻고는 가슴 먹먹하게만 있는
이 동생은
참으로 몹쓸 것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