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밥 숟갈을 들다가 베란다로 스며드는 볕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비가, 지겹던 비가 그쳤는지 앞동을 비스듬히 감싸안으며 낯설은 볕이 스며들고 있었다. 남편의 출근길에 살짜기 얹어져서 갈려면 서둘러야 한다. 뜬금없이 산에를 간다니 남편은 그저 못말리는 십대를 쳐다 보듯이 본다.
매사에 내키는 대로 한다나 뭐라나. 츠암나. 오랜만에 퍼질러진 몸으로 산에를 좀 가겠다는데 반응이 별로이다. 그러든 말든 운동화끈 단단히 조여 매고 운동복에 챙이 긴 모자까지 모양새는 그럴싸한데 마음이 허하네.
비가 내리고 난 후의 산은 순결한 처녀의 냄새가 난다. 알맞게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새들의 소리에 길 트기를 주저하고 바삐 내달르는 아래 동네의 소음은 아랑곳 없이 은근히 고아진 곰국처럼 그렇게 계절을 맞고 있었다.
걸음을 디딜때마다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마음 한 켠에서 소리 지르기를 주저하지 않던 쓰잘데기 없는 그 모든 것을 나무뒤에 몰래 묻어 버렸다. 행여 누구라도 지켜 보고 다시 줍기를 채근할것만 같아서 마냥 꾹꾹 뒷발꿈치에 힘을 싣고선 팔을 휘휘 흔들며 바람 가르기를 하였다.
부지런한 이들은 어느새 새로운 기운을 안고서 내려 오고 뻐근한 허리를 누르면서 올라가는 목덜미엔 땀방울이 맺힌다. '바람이 서늘도 하야,뜰 앞에 나 섰더니 .....' 조금씩 흥얼거리는 가사들이 뜨문뜨문 입안에서 맴돌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두런거리는 노부부의 말소리는 가을의 산자락에서 지나온 세월의 깊이를 문득 가늠게 한다.
이상하다. 왜 이리 눈물이 많아진 것일까. 한가득 심호흡에도 둘렁둘렁 발을 흔들며 앉아 있는 약수터의 낡은 의자에서도 찔끔거리며 마음이 흔들린다.
"으이구, 저넘의 성질머리 하고선.." 남편은 매양 그런다. 특이하게도 균형이 맞지 않은 것은 성질머리에 전혀 아닌 눈물때문에 또 한 소리를 듣고는 하는데 고장 나버린 눈물샘은 시도때도 없이 오랜만에 찾은 산에서 툭 터뜨려지고.
아마도 계절 탓이겠지. 그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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