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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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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걸쳐진 하루


BY 다정 2003-09-28

"내가 누구냐고?
당신 챙기고,너희들 챙기고,그러다 보니 내가 없더군.
나도 이젠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주인공의 눈물맺힌 절규에 가족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하루가 24시간이란 것이 참으로 길다.
늦은 점심에 서둘러 학원으로 달려나간 아이를 보내고 나니
내내 흐린 창문밖으로 늘어진 시간만이 걸려있다.
대충 나갈려니 잔뜩 거무틱한 얼굴에
부시시한 머리,뭐라도 찍어 바르지 않으면
이젠 나가는 것에도 자신이 없어진다.어느새.
모자를 푹 눌러쓰고
분첩이 슬렁 지나간 자욱으로 덜덜덜 래커를 끌면서 시장에 나갔다.

나만 생기가 없는 것인지
이상하게 다들 조용하다.정말 이상하다.
오랜만에 들린 화장품 가게.
이곳저곳 병원 치료 받은 주인 여자의 힘없는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고
손님으로 들어 온 농아인 아줌마만 웃음이 가득이다.
누구에게 선물을 하려는지
연신 펜으로 말을 적더니
벽에 걸린 '하리수'의 얼굴을 보고 참 예쁘다고..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한 그녀를 보니
마냥 늘어진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야유회를 떠난 남편은
전화도 한 통 없다면서 섭섭하다나.
왁자지껄한 소음속으로 남편은 사라지고
어스름한 저녁부터 보기 시작한 비디오의 한 장면이
못내 가슴에 자리한다.

있어야 할 곳에 아내가 있고
아이의 엄마가 있고
세월 속에 묻어 둔 젊은 날의 자신은
별개의 존재가 되어 버린 그녀가
걷지 않은 빨래처럼 베란다에서 하루를 더 자고 있다.




2003-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