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가 흩뿌리던 1월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외삼촌의부고_____. 예상은 어느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소도시를 향해 가는 차창밖은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이 한창 이었다. 거의 30 년만에 마주한 외가의 친척 들은 세월의 밖에 있는이들 처럼 그대로 였다. 우습게도 그 상황에 웃음이 베실거리며 나의 입가를 간지르고 있었으니_____. 나의 엄마가 먼저 돌아 가시고 오빠인 외삼촌이 그 다음, 친척들은 그랬다. 별난 사람 부터 먼저라고. 울 엄만 아직도 별난 사람으로 살아 있었다. 방학이 시작되면 언니와 난 외가로 입덜음하러 보내졌었다. 한여름 볕이 한참일때 외삼촌은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 주워라고, 남김없이 주워라고, 대청에 앉아 계시면서 채근 하셨다. 아이가 없는 외가의 방학 살이는 나에겐 견디긴 힘든 나날이었다. 넓은 집도, 맛있는 음식도, 좋은 옷도, 마음의 빗장은 열지 못하였다. 변하지 않은 관습의 굴레에서 외가는 그대로였다. 한평도 가지지 못하는 망자의 슬픔마저도 남겨진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굴삭기가 선산의 한 조각을 파헤쳐 낼때도 가루로 남겨진 육신이 그 속에 묻힐때도 보이는 것 그 뿐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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