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어빵과 오뎅
나와 마주 보는 곳에는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오륙층 되는 건물이 몇개 서 있는데
바로 앞에 파란 간판의 은행이 있고 .. 왼쪽으로 또 하나의 다른 은행이 있고 큰 공장들과 기숙사,
오른쪽으로는 약국과 편의점, 피자집, 휴대폰 대리점과 스포츠웨어점,
그 위로는 치과가 세개, 피부과가 한개 산부인과가 두개, 레스토랑이 두개, 모텔이 한개,
지하의 큰 주점.. 내 뒤로는 큰 대로, 기타...
수 없이 지나 다니고 오고 갔던 길과 건물의 모습이었지만
이런 것들이 내 눈에 들어 오는데는 한달쯤이 걸린듯 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간판들의 상세한 이름들은 다 외우질 못해
누군가 길을 묻거나 상호를 찾으면 머뭇거리며 두리번 거리기가 일쑤다.
잉어빵틀 앞으로 놓여지는 어묵 꼬지가 몇개쯤 쌓였고
누가 몇개의 잉어빵을 집어 먹고 몇개의 어묵을 먹었는지
얼마전 왔던 손님이 오늘은 몇 번째 왔는지
넓은 어묵을 좋아하는지 긴 어묵을 좋아하는지
하늘색 가운의 간호사는 어느 병원에 근무하고
분홍색 가운의 간호사는 어느 병원에 근무하는지
어느 분이 부 행장이고 은행장인지
그사람이 피부과 원장이었는지 치과 원장이었는지
산부인과 원장이었는지 내과 원장이었는지
내 옆에 꼭 세워 두는 자동차 번호판이 몇 번인지
이런 것들은 아직도 몇 달은 더 걸려야 할 듯 하다.
이렇게 난.. 사람 얼굴을 익히고 이름과 번호를 외우고 셈을 하는게 느리다.
은행 간판의 불빛을 의지하며 장사 하길 몇 일... 캠핑용 렌턴을 사용하길 몇 일...
아무래도 길어져 가는 초겨울 밤의 어둠을 견딜 수 없어
남동생이 사용하다 구석에 놓아 둔 발전기를 수리 했고
가로등 불빛 아래 벌레들의 춤사위가 부산스럽듯
밝은 전등이 켜지니 한결 손님들의 발 걸음도 잦아 지는듯 했고 그렇게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데...
아까운 휘발유가 타 들어가는 발전기를 쓰며 속이 타 들어가도
어디 가서 전기 좀 끌어다 쓰자 할 배짱도 아직 없고
남의 주차장 한켠을 턱~하니 쓰면서도 땅주인이 나타나 뭐라 할 때
뭐라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지 생각도 못 해 두었고
한달이 지나도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이문을 많이 남기는지
어떻게 해야 내게 덕이 되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남동생이 얼마간 장사를 하던 자리라 그 뱃심만 믿고 하고는 있지만
아무턴 저만 믿으라는 남동생만 진짜로 믿고 버틴다.
한달...
그동안 팔려나간 잉어빵과 어묵꼬지가 몇개 였는지 이젠 셀 수가 없지만,
나의 얄팍한 동정심이 우월감으로 바뀌지나 않을지 모를 시험을 치르게 하는
기억에 남는 몇 사람이 있다.
매일 저녁 여덟시 쯤이면 내 앞을 지나며
달달달 거리는 손수레을 끌고 파지를 모으러 다니는 할머니가 있는데
어느날 뜨거운 국물을 얻어 마시며 며느리가 아이들 넷을 놔 두고 집을 나가서
내가 이러고 다닌다며 내 마음을 짠~ 하게 하고 가버려
할머니가 지나갈 적에 간혹 주섬주섬 담아 주는 잉어빵이나
집으로 들고 가면 대 부분 버려질 남은 어묵을 국물과 함께 담아 주면
민망하리 만치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후줄그레한 차림의 할아버지 한 분이 간혹 오는데
늘 그렇듯 말도 없이 사람들이 앞에 늘어서 있든 말든
시커먼 손을 쑥~ 비집어 넣어 잉어빵을 하나 집어 들고는
옆으로 비켜서 허겁지겁 입으로 가져가 드신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또 하나... 더 드시라고 해도
더도 덜도 않고 네개만 드시면 천원짜리 한장을 쑥~ 내밀고 가 버리신다.
어제는 뜨거운 어묵 국물을 한컵 드리니 싫다고 했다.
그러면 물이라도 한컵 드릴까요? 했더니 그것도 마다 하신다.
그리고, 꼭 세명이 뭉쳐 다니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데
천원에 네개씩 담아 주는 잉어빵을
맨 처음 오던 날 한사람에 두개씩은 먹어야지 않겠나 싶어
두개는 뽀~너~스 라며 집어 넣어 주었더니
말도 통하지 않는 나의 어눌한 발음에 씩~ 징그러운 웃음만 흘리고 갔었다.
그리고 얼마 뒤 너무 많이 남은 빵을 주체 할 수 없었지만 일찍 가야 할 일이 있어
이 삼천원씩 봉투에 담아 두고 허겁지겁 뒷 정리를 하는데
그들이 지나 가길래 헤이~ 하고 손짓으로 불러 두 봉투를 주었더니
돈을 주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리길래 노~노 했더니 꾸벅 꾸벅 인사를 하며 갔었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두번은 오길래 혼자 오던 둘이 오던 셋이 오든
꼭 두개씩을 더 넣어 주었더니 그제는 땡큐~하며 한마디 하고 갔다.
인도네시아에서 온지 삼년이 되었다는 스물 일곱살의 눈이 사슴같이 예쁜 아가씨가
맵디 매운 땡초를 썰어 넣은 간장에 어묵을 푹푹 찍어 먹는 걸 보고
맵지 않냐고 물었더니 자기 나라에도 매운걸 잘 먹는다며 아주 맛있게 먹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가 추웠던 어느 날 잠시 들렀던 친정 엄마가
이쁘고 안스럽다며 손을 어루만지니 엄마가 제일로 보고 싶다고
눈가가 얼핏 젖어 드는 걸 나는 보았다.
갈색으로 잘 익은 네개 천원인 잉어빵을 두개 더 넣어주며 잘 가요~ 하는 내게
언니~ 다음에 또 올께요... 하는데 그땐 꼭 이름을 물어 보아야 겠다.
이 밖에도 수입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피부과 원장은
종종 퇴근길에 세개의 어묵을 먹고 가고
내과 원장 부인은 남매를 데리고 가끔 들러서
꼭 잔돈으로 셈을 해 주고 가고
지하의 마담은 서너개 먹은 어묵값을 꼭 만원짜리로 계산을 해서
바쁘기 그지 없는 날은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어떤 날은 늦은 오후부터 시작하는데
하루 예닐곱시간, 일곱여덟시간 일을 하며 거의 종일 서 있는 탓에
종종 말썽이던 허리가 움쩍 달싹도 못할 지경으로 허리가 아프기도 했고
다리가 퉁퉁부어 밤이 되면 져려오는 종아리에 눈물나기도 했고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일에 팔은 매일밤 욱씩거리며 쥐가 나기도 한다.
나와 대각선으로 보이는 편의점에선 복권을 팔고 있다.
주말이면 드나드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쩍 바빠져 보이는게
아마도 저녁에 있을 추첨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행운을 꿈꾸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잦아서 일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나와 마주 보이는 곳엔
어스럼한 어둠이 짙어지는 저녁이 다가오면
파란 간판에 환환 불이 켜지면서 밝은 빛을 보태 주는 은행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은행에 구좌를 개설하며 이 통장에 그득하게 돈을 채워야지 하고 맘을 먹던 날,
은행 창구 직원이 얼핏 흘린 말을 빌리면
하루에 뽑아지는 대기자 번호표가 요즘은 예전의 반도 안된다고 하는 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사람들의 형편이 예전만큼은 아닌듯한게 아닌가 싶다.
풀빵 하나를 집어 먹고 하는 소리들이
한결같이 경기가 좋지 않다느니, 먹고 살기 힘들다느니,
젊은 사람이 어찌 이런 일을 다 할 생각을 했냐느니,
남편이 사업에 실패 했냐느니...
뭐 이렇게 안 좋은 쪽으로만 질문을 해 온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막연하게
내게 십억이...아니 일억이라도 생기면 무엇부터 할까... 하는 생각으로
이것 저것 터무니 없이 계획을 세우느라 밤을 지새는 날이 부쩍 많아 진다.
내게 많은 돈이 생긴다면
먼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한 돈은 꼭 남겨두고 써야지...
또 얼마간은 시어른과 엄마을 위해...
또 얼마간은 누구를 위해...
또 얼마간은 누구를 위해...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밤
따뜻한 온기가 솔솔 피어 나는 길가의 포장마차로 가서 그이와 단 둘이
면발 부드러운 우동 한그릇을 몰래 사 먹고 들어오는 소박한 행복도 상상 한다.
이렇게 생각만으로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작은 소망을 이루는 상상을 한다는 건 아~ 얼마나 행복한 꿈 인가...
그런 꿈을 난 요즘 종종 더 하게 된다.
아직도 눈물 글썽거리며 떨어지기 싫어하는 작은녀석을
오후 내내 친정 엄마에게 떼어 놓고
매일 두 세통의 물과 어묵통,
대여섯봉지 끼운 어묵과 국물낼 재료들과
이것 저것 필요한 것을 챙겨 일을 나가며 때론 아직도
집으로 돌아 와 덜 챙긴 것들을 되 가져 가는 정신 쏙 빼놓기도 하는
잉어빵 아줌마, 오뎅아줌마 소리 듣는 어설픈 장사꾼이지만
햇살이 따뜻해져 오는 봄이 올때 쯤이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이렇게 부푼 꿈이 현실이 되는 잉어빵과 어묵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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