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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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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이야기] - 당신에게


BY 뜰에비친햇살 2004-09-13

    당신에게... 그땐 참 많이도 편지를 썼더랬는데 오랜만에 당신에게 글을 쓰자니 쑥스럽네... 많은 사람들의 결혼이야기를 읽다보니 새삼 우리의 이야기도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때 우리 참 우연찮게 만났는데... 하얀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날리던 사월의 그날 왜 내 발등을 꼭 밟았데요? 일부러 그랬지요? 눈부신 꽃잎이 융단처럼 펼쳐 있던 그 나무 아래에서의 우연한 부딪힘이 우리의 첫 만남 이었어요 그죠? 사보에 실을 행사 자료를 찍으러 커다란 카메라를 매고 뛰어 와 꼬맹이 발등을 누르던 남자가 사랑의 시작이 될 줄은 그땐 몰랐어요 눈부시게 하얀 꽃잎이 내 앞으로 떨어질 때 느꼈어야 했는데 수 천의 사원 중에 그것이 인연이 될 줄은 몰랐어요 문학회를 모임을 마치고 오던 날 찻잔을 마주 하며 당신과 동성인 내게 본이 어디냐고 멋적게 물어볼 때도 당신의 큰 눈에 나를 담아 두었던 걸 바보같이 그땐 몰랐어요 한참지나 아주 한참이 지나서 당신 가슴에 나보다 더 큰 아픔이 담겨 있는 걸 느꼈을 때 내 안에 당신이 자리 한 줄 어렴풋이 짐작했어요 당돌하게도 나보다 많이 컸던 당신의 큰 키와 그 슬픔을 내 작은 가슴에 보듬어 줄 자신이 생긴 것이 참 용해요 사랑의 힘이란걸 그때도 몰랐으니 말이에요 아마도 그리 용감했던건 그땐 너무 어렸던게 아녔는지 모르겠네요 사내 커플이라 몰래하던 데이트도 스릴 있었지만 늘 내 손 놓지 않고 함께 걸었던 그때는 지금 생각해도 꿈결이었어요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육개월만에 지인에게 들켜 버린 것은 아마도 은근히 우리가 바라던 일이였는지도 몰라요 그죠? 막차로 돌아가던 나를 바라보며 기숙사로 발길을 돌리던 당신의 슬픈 그 눈빛에 차를 멈추고 달려 가고 싶었던 날도 참 많았었다고 지금에 와서야 고백 한답니다. 사내서만 통용되는 도장을 찍어 발신인 불명의 하얀 봉투를 슬며시 날라다 준 우리의 비밀 연락병은 아마도 당신의 신부름이 지겨웠을 거예요 모두가 그 사람과 내가 사귀는 줄 알았던 거 아나요? 당신이 보내 준 수 많은 연서들을 아직도 간직 하는 것도 모르죠? 아주 슬프거나 다투고 난 다음 날 그것들을 꺼내보면 나를 다독이고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 구실이 되더라구요 수 년 전에 몽땅 태워 버리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러지 않길 잘 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니 우린 참 많이 걸었어 그죠? 누가 볼세라 서로 멀찍이 떨어져 퇴근하고 매일 가는 포장마차에서 만나고 똑 같은 길을 알맞게 얼굴이 붉어지면 걷고 또 걷고 그러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오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걷다가 결국은 막차로 집에 오고... 말도 없이 손 꼭 잡고 걷고 또 걷고... 연애와 결혼은 동 떨어진 현실이란걸 미리 알았더라면... 지금처럼 긴 시련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혼비백산했을텐데 ... 그래도 이렇게 결혼 전의 예쁜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게 참 다행이라 생각되니 차가 없고 컴퓨터가 없고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 우린 참 낭만적인 한토막을 건져 놓은 부자인 셈이에요 아쉬운건 눈빛만 봐도 다 알아 차렸던 그땐 말 없이 걷기만 해도 좋았는데 지금 당신은 그런 여유도 없는게 너무 안스럽네... 무뚝뚝한 당신만큼 나도 참 말없고 재미 없는 여자 였어요 그죠?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 번하고도 반쯤은 더 변해버린 지금 순진했던 꼬맹이가 볼품없고 주책 맞고 억센 아줌마로 변해 버렸다고 당신의 피아노가 되어 달라던 그때의 약속을 저 버리고 여지껏 조율하며 쥐고 있던 손은 놓지 않을거죠? 잠 많고 급한 성격, 올빼미 기질에 술 좋고 친구 좋고, 일 속에 묻히면 끝장 보며 보기보다 보수적이고 다혈질이고... 나열하면 줄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당신의 면모 속에서 아마도 당신이 나를 보는 시선 또한 그렇게 결점을 찾지 않을까 하며 결혼은 서로를 거울 삼아 변해가는 모습과 성격을 덮어주고 이해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깨달으며 산답니다. 주위 사람들이 잘 난 남자 하나 건졌다고 은근히 부러워하며 겉 모습만 보고 인생의 실수 하지 말라고 할 적에도 나는 당신 마음이 다 보여 두렵지 않았어요 밉다 밉다 하면서도 예쁘게 사랑하던 그때만 생각하면 이쁜 구석 새록새록 찾아 지는 건 아마 아직도 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나봐요 당신도 내가 미울땐 그때 생각하며 내 이쁜 구석 찾아 줘요 알았죠? 결혼이란 밉다가 사랑하다가 슬프다가 기쁘다가 눈물나다가 행복하다가 그러는 건가봐요 예쁘게 사랑하던 그런 날 떠 올리며 힘든 날 참아가며 사는 건가봐요 네살 차이에 궁합도 찰떡이라며 당신 할머니가 참 많이도 이뻐 해 주셨지... 작은 고추 매운 줄도 모르고 흉 보시던 고모님도 나를 이뻐 해 하시고... 그래도 당신 집에서 맏며느리 미워 하는 사람 없는 것 보면 나도 그리 미운 털 박힌 여자는 아냐 그지? 기가막힌 작품인 아들녀석도 그사이 둘이나 생기고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고모도 할머니가 되시고 우리에겐 참 많이도 견디기 힘들고 무던히도 풍랑이 심했던 항해 였어 그지? 몇번의 실패와 고비고비 넘어가는 힘든 날들 당신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지 못하는 나약함이 불혹을 넘긴 당신을 보는 요즘은 참 많이 미안하답니다 이런 내맘 알죠? 앞날의 빛이 아직은 희뿌였게 보이는 시간이지만 당신과 나의 삶을 식도를 흘러 들어온 가시처럼 목젓을 따갑게 찔러도 가로로 막혀 뱉어 내고 싶은 가시의 걸리적 거림따윈 큰 기침 한번 하며 염두 해 두지 말기로 해요 순풍으로 돌아가던 삶에 진로 방해를 하며 심술을 부려도 싸늘하고 변덕스러운 날들이 울렁거리며 뱃속을 휘저어도 먼곳에 흐릿한 아지랑이 비친듯 몽롱해 지기도 하는 어느날에도 무거운 멍에가 간혹 배반과 실망으로 덮쳐 오더라도 그 뒤엔 희망을 달고 오기도 한다는걸 오늘도 의심하고 싶지 않습니다. 서로를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결혼이라는 커다란 배는 좌초하지 않는다고... 당신 나 믿죠? 나두 당신 믿어요... 노 저읍시다... 조금씩 조금씩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