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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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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없는 남자


BY 뜰에비친햇살 2004-07-07

    [ 배경음악 :  Chris Spheeris - Always ] [ 사진 :  toyoyo 님 ] [ flash :  melody ]   드르럭 드르럭~ 진동모드에 맞춰 놓은 핸드폰이티비 소리만 자작거리는 어두운 방바닥을 허우적 거린다. 선호하는 번호데로 꾹꾹 눌러가며 리모콘에 괜한 투정을 하다가 대번에 그 사람인줄 알고 귓가로 갖다 댔다. '배고픈데 간식거리 할 거 있나?' '냉장고 뱃속이 횡~ 한데 어쩌지...' '할 수 없지... 금방갈게 물 좀 얹어 놔~' 라면은 양은냄비에 끓여야 맛있다며... 좋아하는 라면 맛있게 끓여 주려고 생일선물(?)로 샀어~ 하고 얼마전 그의 턱 밑에 내 밀었던 노란 양은냄비에 툴툴거리며 물을 담아 두었다. 새벽 한 시... 부석한 그가 시큼한 땀내음을 풍기며 현관을 밀고 들어오는데 이틀간 땀에 절은 옷들을 훌훌 벗고 씻으러 들어가는 벌건 등줄기가 오늘따라 유독 안스럽다는 마음에 가슴을 멍먹하게 한다. 수도물이 끊어지고 양치 하는 소리에 맞춰 가스불을 켜고 금방 끓어 오른 노란 양은냄비에 라면 덩이를 밀어 넣고 그 위에 스프를 쏟아 넣고 얼른 두껑을 닫았다. 금새 폴닥이며 두껑이 촐삭거린다. 계란 하나를 톡 깨트려 넣고 난 잠시 뒤면 그가 나온다. 선풍기앞에 풀석 내려 앉던 그가 계란은 넣지 말지... 하고 말했다. 그는 라면에 다른 것을 첨가 하는 걸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난, 파며 양파며 계란이며 새우며, 종종 이것 저것을 넣어 끓여 준다. 그는 신제품의 라면이 나오면 꼭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우리집엔 라면이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고 과음을 한 날이나
    늘어지게 자고 난 일요일 아침엔 곧 잘 라면을 찾는다. 덩달아 아이들도 스프 냄새만 맡아도 코를 킁킁거리며 쫓아 온다. 라면, 그 뭐이 좋은 거라고... 내 마음을 알던 말던 나는 다음에도 냉장고 속의 다른 재료들을 첨가 할 지 모른다. '다시 나갈거야?' '응~ 저녁을 일찍 먹으니 꼭 이맘때 배가 고프고... 좀 씻기도 하려고 왔어~' 원형데로 뭉쳐 있던 라면을 풀어 헤쳐 후루룩 거리며 꼴난 라면 한 사발을 먹는 동안 줄줄 비오듯 땀을 쏟는 모습에 보약이라도 한재 먹이며 좋을걸... 하는 생각이 스친다. 문단속 잘하고... 별 일 있으면 사무실로 전화 해... 이틀만에 들어온 그는 긴 얘기, 다정한 얘기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소리에 찰칵 문을 잠그고 나니 다시 티비 소리만 자작 거린다. 나는 내 남자가 하는 일을 -프로그램 짜는 일- 이라고 단순하게 말 하는 것 밖에 미안하게도 아는게 별로 없다. 밤이 낮이고, 낮이 밤이고 그렇게 거꾸로 사는 걸 불만을 토하면서도
    언제부턴가 당연히 여기게 되었고, 늦은 귀가와 며칠씩의 부재도 바뻐서 그런가 보다~ 하고 출장이 잦으면 허전한 마음은 깊숙히 감추어 두기를 감쪽 같이 해 냈다. 잔소리와 바가지는 신혼시절 잠시만 허용 되는 줄 알고 이후로는 나의 사전에서 지워 버렸다. 무관심하다 할 만치 그의 생활을 인정해 주었다. 그러면서 난, 그의 낭만과 촉촉하고 현명해 보이던 그의 눈빛과 패기와 자신감 넘치던 모습을 가슴에 묻었는지 모르겠다. 그림과 시에 붙여 보내 준 그 많던 연서와 기타에 실어 불러 준 노래와 공중전화 앞에서 외줄을 태워 나즉 나즉 보내 주었던 이야기와 막차로 떠나 보내던 쓸쓸한 아름다움은 이제 그만 허무한 당신의 나이와 바꾸어 버렸을까? 연애를 하는 몇 년 동안 몇시간을 손을 잡고 걸어도 서로 몇 마디 건내지 않았고 부끄럽던 눈 웃음과 손에 힘을 주던 일 말고는 없었다는 걸 왜 이토록 뒤 늦게 알았을까? 꽃다운 그때만 해도 이렇게 밍밍한 남자 일줄은 몰랐다. 참 재미 없는 남자... 이 남자 혹... 사기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