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로 쓴 편지
그대에게 할 말이 많아서
전화를 하려다가 말았습니다.
내 목소리가
긴 선을 타고 그대의 귓전에 울릴 때면
눈물이 되어 들릴 것이란 걸 알기에 말입니다.
하여 그대가 나로 인해
밤새 잠을 뒤척이게 될 것을 알기에 말입니다.
혼자서 뒤척이다 그냥 그렇게
위로하며 밤을 보낼 용기가 생겨서
전화를 하려다가 말았습니다.
할 말은 참으로 많은 것 같은데
가까이 있을 때나 지금이나
수화기만 들면
왜 눈물부터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다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말을 가슴에 두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밤을 새워가며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며
기나긴 편지를 썼답니다.
아침에 읽어보니
푸른 잉크 물 하나 번진 자리도 보이지 않는
눈물로 얼룩진 자리만 가득한 백지로
내 마음을 써 놓았지 뭐겠습니까
밤이 그토록 길다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그때 전화를 걸었지
그대에게 편지를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렇게 많은 백지 편지를 모아 두지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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