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파도,
밀려왔다 사라지는 물거품,
고운 모래 사장
인적이 드문 바다.....
날마다 부때끼며 사는 남편이 미울 때
이러저러한 관계로 만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받는 작고 사소한 상처로 인하여 힘 들 때마다
제 한계를 넘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욕심 부려
동시에 벌인 여러 가지 일 감당하느라 강행군을 해서
몸 여기저기가 아파올 때마다
바다가 생각나곤 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때마다 바다를 생각하거나 바라보면
가슴 한 구석이 잔잔해지고 평화로워지는 것이
새로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차량 사고를 계기로
하루 종일 아이들을 데리고 있기 시작한 지난 7월부터는
무엇 때문에 정신이 없는 건지
아니면 별로 힘든 것 없이 그냥 그렇게 생활을 하고 있었던건지
바다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한 번도 바다를 보고싶다거나 바다 자체를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남편 말로는 생활에 찌들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일상에 찌들어서 그런 것일까?
몇 시간 동안을 콘도 베란다에 앉아서
바다를 눈 앞에 두고,
콘도 앞 광장에서 들려오는 두엣 가수의 생음악 소리를 들었다.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남편은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아쉬운 듯 안쓰러운 듯
쳐다보다가 말을 건넨다.
가끔 바다에 오자고.
특히 부부 싸움 하고선.....
이상한 일이다.
노래를 듣고 있자니 바다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바다를 보고 있자니 노래가 거슬리고...
그렇게 바다를 눈 앞에 두고도
전처럼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시간이 서너 시간 흐르는 동안
내 메마른 감정에 남편은 놀라웠던 모양이다.
방금 타다주는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손에 쥐고 있어도
그냥 무덤덤한 그런 감정들이었는데
음악이 끊기는 순간 바로 밀려드는 파도 소리를 듣자
가슴에 갑자기 커다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아리다고 해야 할까
짠- 하다고 해야 할까
가슴 한 구석에 파도 소리만큼 커다란 파문이 일면서
어쩜 그렇게 눈물이 나려고 할까?
아.....
그때부터 파도가 눈에 들어오고
달빛도 들어오고
달빛 아른 거리는 바다도 가슴에 들어오고
하늘을 수놓는 불꽃 놀이도 아름답게 보이다니....
남편과 함께 바닷가로 나가니
음...
그 코 끝을 파고드는 바닷내음
생생하게 가슴을 치면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달빛 비취는 바다 한 켠....
한 편의 그림 한 폭이었다
여백이 느껴지는 한 폭의 동양화.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역시 바다는 나의 영원한 애인이다.
꿈에서도 그리는
평생을 같이 하여도 질리지 않는 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