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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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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무 아래에 서면


BY 꿈꾸는 바다 2004-06-03

    우리 동네 연립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 주택 사이사이마다 자그마한 뜨락이 있습니다 봄이 되고 초여름이 오기까지 길가의 작은뜨락엔 저마다 겨우내 숨겨두었던 것들을 세상밖으로 밀어내려 노력한 갖가지 나무와 꽃들의 흔적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곳이지요 큰 무화과 나무도 새순을 내밀더니 이젠 연초록의 잎새들이 바람에 한들한들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난 하루에도 몇번씩 무화과 나무아래를 지나갑니다 무화과 나무의 독특한 향이 바람에 날리어 내 몸속으로 들어오면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 추억들이 그리움이 되어 피어오릅니다 마당 한켠에 무화과 나무가 서있던 집 루핑으로 지붕을 덮은 집은 보잘것 없었지만 너른 마당이 있었고 마당가로 개울이 흘러가던 집 개울가 언덕위로 구기자 나무가 빨간 열매를 매달던 곳 까치발을 하고 돌을 딛고 올라서 담벼락위로 얼굴을 내밀며 "영숙아"하고 벗의 이름을 부르면 환한 얼굴로 방문을 열며 내다보던 친구의 집 그 집 마당에 서 있던 한그루의 무화과 나무 내 나이 아홉살 되던해... 어머니가 점방을 차리셨다 구멍가게 였지만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참 많았지요 생필품에 과자에 사탕에 빵... 그리고 어머니가 동해남부선 완행열차를 타고 시골 오일장에서 가져오는 푸성귀와 과일들... 모든것이 귀한 때였으니 점방집 딸이라고 해서 덥석덥석 집어 먹을 수 있는건 아니었던 시절 어머니 몰래 버터크림이 땀뿍 든 빵을 가져가 나눠먹었던 곳도 무화과 나무 아래였고 과자봉지를 찢고, 사탕항아리에서 꺼낸 것들을 슬그머니 가져가 나눠 먹을 수 있었던 우리의 우정이 무화과 열매처럼 달디달게 익어가던곳 아버지가 술만 드셔서 엄마가 안계셔서 집안이 가난했던 영숙이의 언니가 우리 동네 부자집 오빠랑 시댁의 반대에도 굽히지않고 사랑을 나누던 한그루 무화과 나무가 서있던 집 축하객도 별로 없던 초라한 결혼식 나와 영숙이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랑 신부 들러리가 되어 작은 꽃다발을 들고 나가 건네줄때 새 색시 영숙이의 언니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던 개울이 흐르는 마당이 있던 집 그때 그 꽃은 어떤 꽃이었을까 ,어쩌면 들꽃이었을지도... 이제는 형태조차 생각나지 않는 꽃다발의 향기가 무화과 나무의 향기에 섞여 바람에 날리는 유월... 잘 익은 무화과 열매를 쪼개어 나에게 건네주며 환하게 웃던 어린 영숙이의 얼굴이 삼십칠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내 가슴에 안겨오고 오늘도 나는 무화과 나무 그늘아래로 내 삶의 발자취를 남김니다 보고싶다 친구야 04. 6. 3. 목요일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