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박완서님의
'황혼'이란 글을 듣게 되었다.
고부간의 같등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놓은 글인데 난 박작가님의 글을 접할 때면 탄성이 나온다. 글의 묘사와 환경을 서술하는데 한치의 빈틈도 없이 리얼하게 바로 앞에서 장면이 펼쳐지는
느낌을 받고, 뛰어나고 섬세한 글솜씨에
매료가 된다.
40분간의 글을 눈으로 귀로 듣고나니 어머님도
떠올라 잠시 웃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길을 가다가 장미를 보면 서서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지나간다.
그와더불어 시어머님 얼굴이 떠오른다.
장미를 유독 좋아 하셨던 어머니.
병에 앓아 누워 계셨음에도 마당에 핀 빨간장미를 당신 스스로
가위질 하셔서 머리맡에 두시곤 장미가 이쁘다고 말씀 하셨다.
그때는 단독주택에 살아서 화단에 꽃들이 많았다.
꽃들뿐만 아니라 대추나무 모과,가죽나무도 있어서 봄에는 가죽나물과 가죽부각을 만들어 주셨고,가을엔 대추를 온가족이 함께 긴막대기로 내리치며 따곤 했었다. 길가는 사람에게 같이 사는 이웃에게도 나누어주곤 했었다.
제사상에도 올리고,말리기도 하고 대추청을 만들기도 했었다.
어머님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셨고 손재주가 좋으셔서 나에게 니트도 짜주셨는데
철없는 며느리는 그옷을 좋다고 표현도 안 했고 몇 번 입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곧 어머님 제사가 다가오니까
장미를 볼 때마다 어머님 얼굴이 오버랩되어 고은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무엇이 급하셔서 그리 빨리 세상을 뜨셨을까?
위암이란 징조를 왜그리 늦게 발견하셨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천방지축 며느리에게 시어머님은 아버님과 시동생 둘까지 맡기고 떠나셨다.
그런데 참이상하다.
그때는 그게 큰 부담도 되지 않았고 그냥 불만도 없이 살았다.
물론 조용하신 아버님과 크게 속 썩히지 않는 시동생들이었기에
그냥 살았나 싶기도하다.
철없는 며느리는 고모님과 큰어머님의 도움을 받으며 시동생들을 결혼 시켰다.
남들은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난 아직도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이니 함께 살았고 그러다가 좋은 짝을 만났으니 결혼을 시켰고 순리대로 지나갔다.
다만 혼주자리에 어머님 자리에 큰어머님이 앉으셔서 자꾸
어머님이 떠올라 눈물을 훌쩍거리며 눈물을 삼켰다.
길지도 않는 4년을 어머님과 살았는데 아직도
오월의 장미를 보면 어머님이 생각난다.
분명 어머님과 나는 천생연분이었나 보다.
어머니~
이번 제사때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장미 한다발을 제사상에 함께 올려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