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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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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도리


BY 행운목 2004-01-08

새해도 되고 해서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했더니 다음주 토요일에 유정이 돌잔치를 한다고

하셨다. 유정인 남동생의 예쁜 둘째딸이다.

친정엄마께서는 그날 와서 하루 자고 가야지... 하신다. 나는 얼결에 그러마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고  달력을 보니, 17일이면 설대목이 아닌가! 그때 남편은 물건을 하러 나갈텐데...

사실, 토요일 그것도 내가 퇴근한 후, 2시부터 시간이 나는 남편이 그 짧은 시간동안 이곳

저곳을 돌며 아이들에게 인기좋은 물건을 챙겨오기란 쉽지 않을 일이란 걸 알기에, 피곤

하지만 토요일은 가능한 한 빨리 퇴근해서 문구점으로 향하곤 했었다.

그런데, 17일이면 설날 겨냥해서 아이들 장남감이며, 조금 높은 단가의 물건들도 들여와야

할 날인데...

 

시어머님은 홀로 되셔서 다섯남매 교육시키고, 출가시키신 분이라 언제나 전화 한통을 해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다 알고 계셨다. 시어머님이라면 당신 생신날에도 바쁘다고 오지

말라고 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친정엄마는 못간다면 섭섭해 하시고, 걱정하신다...

시어머님은 장사하는 사람은 손님이 우선이라는 분이시고, 친정엄마는 하루 가게문 닫고

오면 될텐데 하시는 분이시다.

남편이 문구점을 하고 부터는 이렇게 집안 행사가 있을때마다 나는 머리가 아팠다.

친정분위기와 시댁의 분위기가 이렇게 다르니... 당연히 남편은 식구보다, 자기 자신보다

가게가 우선이었고... 늘 이런 문제가 일어나면 다툼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남편없이 나 혼자 시댁이며, 친정이며 다녔던 작년이었다.

시어머니께서는 심지어 시아버지 제사때도 산사람이 우선이라며 남편에게 오지 말라고

하셨다.

대신 같이 사는 큰시누와 같이 제사를 지내셨다. 하긴 교회를 다니시니 그냥 상차리고 예배

드리고 끝내긴 하지만...

그래도 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하루 가게 문 닫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건만, 남편은 지금까지 하루도 가게를 쉰 적이

없다.

심지어 크리스마스때는 심한 감기 몸살에 밥도 제대로 못먹을 지경이었건만, 내가 회사를

간 동안 문을 열었다. 그리고 퇴근 해서 문구점엘 도착하는 그 여덟시간 동안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무모한 열정에 내가 손을 들긴 했지만, 이번 설날에도 또 나 혼자 시댁과

친정을 다녀와야 할 일이 걱정 스럽다.

아니 당장, 돌아오는 토요일이 걱정스럽다. 나는 싫든 좋든 같이 사는 부부니까 내 남편의

못난점, 결코 수용하지 못할 행동도 이해하고 포기하고 그러면서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남동생이나, 여동생은 얼마나 남편을 사람의 도리도 모르는 몰인정한 사람이라

생각을 할런지... 그게 마음이 아프다.

지금도 작년 친정아버지 생신때 가족끼리 모여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때도

참석하지 않아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이기에 더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몇일 간격으로 다가 오는 대출금 갚는 날, 이자 넣는 날,

이런 날이 없어진다면 그때는 남편도 지금보다는 여유가 생길 수 있을까?

그때는 휴가때 하루 쉬고, 설날엔 문닫고 어머님 얼굴 보러 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정말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의 도리라도 제대로 하면서 살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