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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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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끓이는 아이


BY 행운목 2003-12-06

이제 내년이면 5학년이 되는 딸아이가 3학년때 였던 것 같다.

토요일 근무가 조금 늦게 끝나 허둥지둥 집에 돌아왔더니, 딸아이가 배가 고팠는지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그런데, 물을 어찌나 많이 넣었던지 면발은 퉁퉁 불어 있고, 보기에도 싱거운게 맛이 없어

보였다.

그 라면을 후후 불면서 먹고 있는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었다.

내가 집에 있을 땐 혹시라도 사고라도 날까하여 불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었는데...

그러던 아이가 이젠 라면 끓이기에 도사가 되었다.

오히려 딸아이한테 "물 이정도면 되니?" 하고 물어볼 정도가 되었다.

 

남편은 라면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몸에 좋지 않다고 아무리 이야길하고, 핀잔을 주어도 하루에 라면 한개는 꼭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의 라면 끓이는 솜씨는 제법 좋은 편이다.

물을 알맞게 잡아야 하고, 불 조절도 좀 세게 해야 한단다. 그리고 특히 면발을 쫄깃하게

익히는 게 관건이다. 그래서 남편의 라면은 쫄깃하면서 맛이 개운하다.

그런 남편의 know-how를 유전으로 물려 받았는지, 딸아이가 끓이는 라면에서도 제법

남편의 라면 맛이 배어난다.

여자 아이라 어렸을때 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기는 했다.

그래서 호박전이라도 부치는 날이면 얼굴에 하얗게 밀가루 꽃을 피우며, 호박에 열심히

밀가루를 묻혀서 나를 주곤 했었다.

한번은, 김치 써는 일부터 밀가루를 개는 일, 그리고 후라이팬을 달궈 부침개를 만드는 것

까지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일기로 써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엄마와 함께, 엄마의 도움으로 했던 일이었다.

 

딸아이가 제일 처음 혼자서 해낸 요리가 계란후라이다. 혼자 집에서 출출하긴 하고, 반찬도

마땅한게 없으면, 계란후라이를 해서, 고추장을 넣고, 참기름 한방울 두르고, 쓱쓱 비벼서

그렇게 먹으면 맛있다고 내게 자랑아닌 자랑을 했다.

그리고 두번째 도전 요리가 바로 라면이었다.

그동안 어깨너머로 배운 상식으로, 라면 끓이기에 도전했던 딸.

처음엔 마음이 아팠지만, 오히려 내가 집에 있었다면, 지금도 불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었을테고, 딸아인 계란 후라이니, 라면 끓이는 일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을 것이다.


모처럼 휴식을 취하는 일요일.

가끔 딸아이가 기분이 좋은 날이면 "엄마, 피곤하지? 내가 라면도 끓여주고, 안마도 해줄께."

하면서 딸아이표 특급 라면을 대접받기도 한다.

더불어 제법 손맛이 매운, 시원한 안마까지 풀코스로 서비스를 받고 나면 한주일의 피곤이

말끔히 가시곤 한다.

 

우리딸의 다음 도전 요리는 김치찌개라니, 이젠 딸아이가 끓여주는 맛있는 김치찌개를

맛 볼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