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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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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의 죽음


BY 행운목 2003-09-23

태어난지 1개월된 강아지 초코.

그녀석은 우리집에 와서 꼭 열흘을 살다 죽었다.

추석때 시댁에 갔다가 데리고 온 포메라니언이다.

황금빛 털과 까만 코를 가진 어찌보면 원숭이 같기도 한 귀여운 녀석이었다.

난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친정에서는 개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였는지 개만 보면 무서워서 피해다니곤 했었다.

그런데 결혼후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을때 마당에는 어른 몸집만한 샌디라는 개가 나를

맞이했다. 시어머님은 홀로 되신지 25년이 넘었는데, 애완견을 주수입원으로 키우고 계셨다.

먹성 좋고 무대뽀 성격이 강한 시츄 아롱이, 영리하기 짝이 없는 요크셔테리어 단비,

동그란 눈망울이 슬퍼 보이는 치와와 왕눈이, 질투심 많고 애교도 많은 푸들 미미.... 등등

어머니 덕분에 개에 대해 문외한이던 내가 개의 종류를 이 정도나마 섭렵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개들의 특이한 냄새가 싫었고, 특히나 여기저기 날리는 털들은 정말 싫었다.

배변훈련 안된 개들이 여기저기 배설물을 떨어뜨리는 것도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난 개가 정말 싫었다. 남편은 이런 내게 인정이 없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딸아이는 강아지에게 초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초코는 밥주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알자, 매일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어찌나 입맛도 까다롭던지 아무거나 잘 먹지를 않았다. 시어머니가 물에 불려서 주라고

덜어주신 강아지 사료에는 입도 안대었다.

할수 없이 우유와 사료, 소세지를 같이 섞어서 줬더니 그제야 조금씩 먹었다.

아침엔 남편 도시락 챙겨들고 딸아이 학교 보낼 준비하고, 나 출근할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이젠 이 녀석 아침까지 챙겨주고 문구점으로 달려가야 했다.

아침 등교시간엔 정신없이 바쁜 문구점.

남편과 같이 아이들 준비물 챙겨주고 도와주다가 출근하면아침 일과는 끝.

퇴근후엔 문구점 들러 남편과 교대해주고, 저녁 9시나 되야 집으로 간다.

그러면 초코는 거의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꼬리를 흔들고 반갑게 날 맞아주었다.

냄새때문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쓸고, 닦고...

그리고 저녁 먹으면 푹 쳐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요녀석은 놀아달라고 낑낑거리곤

했었다...

처음 사과를 먹던 날. 녀석은 절대 아무거나 덥석덥석 먹지를 않는다.

조심스럽게 혀로 탐색해보고 살짝 물어보고는 맛이 괜찮았나 보다. 그제서야 맛있게 먹는다.

그러던 녀석이었는데...


딸아이가 엄마 초코 감기 걸린거 같아. 하는 말을 그냥 무심히 지나 버린게 실수였다.

토요일은 평일보다 더 바쁜날. 물건을 하러 가는 남편대신 문구점을 지켜야 하기에...

남편이 돌아오면 새로 들어온 물건 다시 진열하고, 정리하고 하면 늘 11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 그 날은 딸까지 온 식구가 총동원을 하는 날이다.

화장실도 가야하고 식사도 해야 하고 하니 딸아이가 옆에서 꼬마 손님들 상대도 해주고,

잔돈도 바꿔주고 하는 것도 큰 힘이 된다.

종일 문구점에 있다가 집에 와서 초코가 저질러논 배설물 치우고 먹이통 청소하고 샤워하고

잤다.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거실에 나왔더니 달려 와야할 초코가 보이질 않았다.

이상해서 찾아보니 자기 집에 엎드려 있는게 아닌가!

그래서 다가가 봤더니 세상에! 코에 누런 콧물이 잔뜩 말라 붙어 있었다.

깜짝 놀라 미지근한 물로 얼굴을 씻겨 주고 먹이를 줬는데 통 먹지를 못한다.

토요일 저녁 조금 쌀쌀했는데 보일러 켜는 것도 잊어버리고 잔게 실수였던 것 같다.

일요일도 남편은 문구점 문을 연다. 아니 일요일뿐 아니지, 추석날에도 열었으니까...

문구점을 한지 7개월째...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

해서 일요일도 오전에 집안일 해 놓고, 점심먹고 남편하고 교대해주러 가야만 한다.

전화해서 알아보니 다행히 동물병원이 문을 열었다고 해서 마침 와 있던, 강아지를

키우는 딸 친구와 딸 둘이서 초코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동물병원을 다녀왔다.

주사를 맞고, 약도 받아 왔는데 의사 선생님 말이 심하다고 내일 와서 입원을 시켜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란다.

기운이 하나도 없이 비틀비틀 걸어다니는 녀석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아무것도 먹지를 못해 우유와 강아지 통조림, 사료를 푹 끓여서 건더기를 건져내고 남은

물에 계랸 노른자를 섞어서 억지로 입에 넣어 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코는 계속 나오고 있었다. 물에 적신 휴지로 코를 닦아내고,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먹이고 가만히 안아주었다.

콩볶듯 바쁜 아침. 문구점 들렀다 출근해야 하는데.... 딸아이가 월요일이라 일찍 끝난다고

방과후에 친구랑 병원을 다녀 오겠단다. 그래서 나는 일상적으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점심때 전화가 왔다. 딸한테서.... 초코가 죽었다고...

딸은 친구들하고 집 뒷산에다 초코를 수건에 싸서 초코가 가지고 놀던 공하고 같이 묻어

주었단다.

출근할때 보던 초코의 동그란 눈망울이 떠올랐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집이 텅 빈것 같다. 그 조그만 녀석이 어느새 이 집을 꽉 채우고

있었나 보다.

딸도 풀이 죽어 힘이 없다.

 

엄마, 우리 강아지 한마리 또 데려오자....

안돼, 이제 강아지 절대 안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