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설거지를 할 것이다. 누가 주부 아니랄까봐 티낸다고 여기저기서 나무란다. 그래도 좋다. 난 설거지를 하며 수많은 세계를 들락거리며 작은 행복을 느낀다. 밥 먹으며 봤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고, 복권이 당첨된다면 어떻게 분배를 할 건지도 한 번 계산해보고, 남편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릇 박박 씻고 헹구며 날려버리기도 하고, 비상금을 어떻게 여러 군데 만들까도 생각해 보고, …… 암튼 설거지를 하며 행복한건 사실이다.
수영은 못 해도 물은 엄청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설거지조차 좋다. 결혼 전에야 요리할 줄 몰라서 모임 때마다 설거지 당번이었지만 지금은 나서서 설거지를 맡는다. 나만의 작은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하루는 남편에게 못마땅한 게 있는데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꾹 참고 있었다. 말로 내뱉어봐야 싸움만 날 것 같아서 어떻게 눈치를 주나 고민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며……. 그 때 남편은 일부러 인지 정말 내 맘을 모르는 건지 한 마디 던졌는데 나의 북받치던 마음을 터뜨려버렸다. 그 때 나도 모르게 그릇을 내리쳤는데 순간 남편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싸워야 마땅한데 순간적으로 미안한 어설픈 웃음이 나와 버렸다. “미안~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그릇이 미끄럽네.”하며 얼버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아닌데……. 그러자 남편도 그냥 농담조로 웃으며 “왜 더 세게 미끄러뜨리지! 몽땅~”하고는 딸아이와 함께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장난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런 미안한 마음과 웃음이 저절로 나왔는지 알 것도 같다. ‘카타르시스’라는 말이 맞나? 설거지를 하며 나의 상했던 마음들이 정화된 것이다. ‘딸그락’거리는 그릇소리에 나의 응어리를 하나하나 꺼내고,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며 ‘왜 그래? 대체 왜 이렇게 속상하게 해? ‘하고는 응어리를 뭉개고, ‘쏴아~’흐르는 수돗물 소리에 뭉개진 응어리가 씻겨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씻겨 내린 불순물들이 마지막 웃음으로 박살나며 ‘쨍그랑!’ 한 마디 던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난 화나는 일이 생기면 설거지부터 한다.
'딸그락 딸그락‘, ’벅벅벅‘, ’쏴아~‘
재빨리 눈치 챈 남편은 2살짜리 딸에게
“스톡아(딸의 별명)~ 오늘은 조심해야 할 것이에요. 엄마가 무진장 화났어요. 저 마구 할멈이…….”하고는 방으로 피신한다.
이 상황에 어떻게 화를 낼 수 있으랴. 농담 한마디로 대꾸하며 풀 수밖에.
행복을 느끼기란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런 작은 행복들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 커다란 행복임을 깨닫는 순간 행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