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참 많이도 썼다 지웠다 했던 기억뿐이다. 뭐 뚜렷이 할 줄 아는 게 있어야 자신있게 적어내려 갈텐데 기본 양식에 있는 내용도 줄이고 남들도 다 할 줄 아는 기술을 온갖 화려한 수식으로 꾸며서 간신히 칸을 메우던 기억이 떠오른다. 벌써 3년 전 일이다. 지금 다시 이력서 양식을 꺼내보니 참 난감하다. 지금이야말로 뭐라 적어야할지 사실대로 적어야할지... 일단 취업하고 나서 사실대로 얘기할까라는 생각도 들고. 사람이 정말 간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급한 사정만 따져서 편리한대로 합리화시켜 버리는 내 모습이 우습다. 그래도 어쩌랴. 정말 다급한데. 끝까지 간사한 인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내 모습에 쓴 웃음만 나올뿐. 별다른 방법이 없다. 괜스레 '우리나라가 어쩌니 제도가 어쩌니'하는 남 탓만 하고 있다.
남동생의 이력서를 봐주면서 자기 자신을 냉정히 판단하기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에겐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정작 내 이력서에는 많은 망설임이 따른다.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는 증거겠지. 내가 뭘 잘하는지 적성에 맞는 게 뭔지도 모르고 평소에 남들이 잘 한다고 칭찬했던 것조차 사실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냥 맘편히 누군가 나에게 '넌 이런 직업을 가져라!' 하고 명해준다면 차라리 편할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난 변덕도 욕심도 또 조금은 이상한 자신감도 많다. 목표만 정해지면 모든 열정을 받쳐 좋은 결실을 맺을 자신감은 있는데 그 목표라는 게 한 번 정하기가 힘들다. 욕심때문에... 사실 변덕도 욕심때문에 생긴다. 난 이것도 잘 할 수 있고 저것도 잘 할 수 있을거 같은 욕심때문에 이것 조금 저것 조금 맛을 본다. 정말 변덕스럽다. 하지만 나만 그런게 아니기에 '작심삼일'이란 유명한 말도 생겼겠지? 꼭 그런 뜻은 아니지만 내 경우엔 의지가 약해서라기 보다 욕심에 따른 변덕때문에 그 말이 적용된다.
오늘도 작심 삼일째 되어간다. 주부와 육아라는 걸림돌 때문에 취업에 골머리를 앓다가 오늘로 삼일째 공무원 시험공부라는 걸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바로 삼일째인 오늘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비가 왔단 말인가... 지금 이 시간까지 정말 고민이다. 진짜 공무원이 되어볼까 아님 회사에 취직을 할까 어느 쪽에 욕심이 더 가는지 계산중이다. 사실 이 계산을 수없이 해 왔다. 주변에선 우울증의 시초라고들 하는데 난 아니라고 해두고 싶다. 내 자신이 깨어있어서 그렇다고 합리화시켜 버리고 싶다.
간간히 메일함으로 날아드는 취업사이트의 3년 전 나의 이력서를 볼 때마다 계산을 한다. 이 이력서의 빈 공간에 가장 멋있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싶어서 세상 사람들의 일을 다 참견해 본다. '음 이렇게도 사는군.' 그 많은 일들을 다 둘러보고나면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보잘것 없는 나의 이력서로.
하지만 지금의 계산으론 언젠가 멋진 단어 하나가 적힐지도 모른다. 작가라는 단어. 그 날을 상상하며 지금 이 순간을 맘껏 즐기고 나서 또 다른 계산을 해봐야 겠다. 이력서야 기다려라. 빼곡히 메워 줄테니. 난 할 수 있단다. 아직 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