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친정엘 다녀왔다.
지척에 있건만 쉽게 나서질 못한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시댁과 사이가 그리 좋은편이 아닐땐
친정에 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침부터 볼멘 아빠 엄마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오늘은 친정에서 저녁까지
다 먹고 오고 애들도 탕속에 넣어서 때좀 불려서 목욕 시켜야지 하며 속옷까지 다 갈아 입혀서 나섰다.
맛난 반찬도 없는데 왜 친정에선 김치 한조각이 그리 달콤한지...
속 없이 저녁거리 생각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아무튼 난 도둑년이다.
잠바 안걸칠양에 두꺼운 후드티를 입고는 나섰는데 친정에 들어서니 얼마나 덥던지
엄마에게 티 하나만 달라서 갈아 입고 거실 바닥이 대리석이라 철부턱허니 바닥에 주저 앉아
오랫만에 사들고온 난을 엄마에게 들이 밀었다.
왜 친정에 갈때면 돈이 떨어지는지...
시댁 갈때는 하나에서 열까지 이거저거 바리바리 챙겨서 내려 놓아야 떳떳한거 같은데
터덜 터덜 애들만 달랑 데리고 늘상 가게 되 한편으론 속상하고 돈없을 때 엄마집에 가고
싶기도 하고 ....
엄마 아빠가 화초를 좋아하시니 귤 몇천원어치 사느니 난초 하나 사다가 항상 안방에
앉아서 멀뚱히 앞만 바라 보고만 있는 아버지 생각에 즐겨 보시라고 사왔는데 엄마는 돈도
없는데 쓸데 없는거 사왔다고 핀잔이시다. 그래도 오늘은 그 핀잔도 달고 으쓱해진다.
세째 동생 애인이 집에 인사 오면서 갈비를 사왔던 모양이다.
우리 오면 해 먹인다고 그 동안 안먹고 모셔두다 아침에 재워 두셨다고 점심 먹으라고
하시길래 늦게 라면 먹었으니 간단하게 국화빵으로 요기하고 일찍 저녁 먹자했다.
그 사람이 집에 오면서 갈비와 엄마아빠 옷과 화분을 사왔던 모양이다.
아주 멋드러진 화분이 하나 거실에 자리 잡고 있으니 보기 좋았다.
동생이 엄마가 옷 맘에 들어 한다길래 어떤 옷이길래 맘에 드셨을까 궁금했다.
옷 하나 사다주면 맘에 들때까지 바꿔입는 까다로운 엄마인지라 엉덩이 앉기가 무섭게
장롱으로 가서 옷을 꺼내보니 화사하고 참 고급스러운 양장을 선물 받으셨다.
엄마가 맘에 들어 하시겠네...옷 정말 이쁘네....호들갑을 떨며...불쑥 내가 이런 말을 다햇다
"엄마 나 이 옷 나중에 나줘라.."
"나 죽으면 ?"
어...내가 이런 말을 다하네.. 우리 엄마 섭섭하면 어쩐데....
대답을 안할 수도 할 수도 없고...안하자니 더 이상해질 꺼 같아서......간단하게 "응" 하고
대답해버렷다.
옷을 걸쳐보고 나한테도 어울린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옷은 나이로 입는거라 하셨다.
사십이 다 되는 나이여도 아직까지 청바지에 티셔츠에 운동화 신고 다니다 이런 양장은
처음 입어보는건데 내가 생각해도 괜찮게 보였다.
동생과 국화빵 사러 가자했더니 동생이 그런다.
"언니네 동네는 국화빵 파는 데도 없서?"
있지만 왜 친정에만 오면 국화빵이 생각이 나는지 아빠는 노인정에 놀러가셔서 아빠도 있음
좋을껀데 하며 속으로 생각하고 말아 버렸다. 국화빵은 이제 나에게 아빠를 떠올리는 먹거리
인가보다..
엄마에게 잠바 하나를 얻어서 입는데 정말 중년 아짐마들이 입는 그런 필드에서나 입을만한
잠바를 하나 건네 주시는데 아무 생각없이 받아서 입었는데..
모랄까....느낌이 남달랐다.
내 몸에 찰싹 달라 붙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현주야...이 옷 나한테 어울리니?"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모양새를 보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였다.
나이를 먹은거다.
나이에 대해서 그리 연연해하지 않고 살다가 느닷없이 엄마의 옷이 내 몸에 잘 맞는게
이렇게 엄마와 내가 늙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나이를 먹었지만 내 스스로 잊고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국화빵 파는곳을 찾는다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못찾고는 길건너편에 상가 많은 곳으로
가보려는데 길에서 1,000원 이라고 써있는 곳에 눈길이 따악 걸렸다.
요즘 1,000원으로 살게 뭐가 있다고 옷장사 하는곳에 써있나 하고 보니 옷가게에서
처분하는 옷들이였다. 이번 겨울에 내복을 몇벌을 사야 겠다 생각을 했는데 내복으로도
쓸만한 그런 쫄바지가 천원이였다. 정신없이 두놈 바지를 다섯벌이나 사고 돈을 지불하는데
오천원이였다. 왜 그리 기분이 좋은지....
옆에서 지켜 보는 막내는 팔짱을 끼고 큰언니의 모습이 좀 그랬나보다.
"야 기집애야 너도 결혼해바.."
이 한마디 해주고 기분좋케 옷이 든 검은 봉투를 흔들며 국화빵은 잊어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니넨 국화빵 공장에 다녀오냐..왜 이리 늦게 오누.."
"엄마 나 애들 옷 천원짜리 팔길래 그거 사왔어"
사온 옷들을 풀어 내놓으니 한철만 입어도 본전은 뽑겠다며..
"그럼 그렇치 그래서 늦었구만.."
신랑은 좋치도 않은 옷 사와서 헬렐레 한다는 듯한 눈빛 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른 저녁 맛있게 먹고 아빠 얼굴도 보구 엄마가 반찬 몇가지 싸주신거랑 새끼친 작은 화분
하나 빼앗고 한보따리 되는 짐을 끌어 안고 차에 올라 탔다.
신랑이 차안에서 궁시렁 궁시렁 거렸다.
엄마 앞에서는 말도 못하다가....
암튼 주체도 못하면서 욕심도 많타는 핀잔을 들으며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애들 홀딱 벗겨서 사온 옷들 한번씩 입혀보고 혼자 기분 좋아서 히죽히죽 거렸다.
결혼 전에는 비싼 옷만 사서 입고 허세 떨고 살았지만 결혼해서 살아보니..
내 옷 보다는 아이들 옷 ...옷보다는 애들 학원비에 더 신경을 쓰고 살고 있다.
비단 나 뿐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것이다.
그래서 아줌마는 용감 한가 보다.
말이 되거나 말거나 .............
신랑이 옆에서 가는 코고는 소리가 들리고 밤은 깊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