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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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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명절중후군 마침


BY Blue By Nature 2003-09-14

한가위를 몇일 앞두고 온몸이 쑤시고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었다.

소위 이런것이 명절 증후군이던가..

시댁에서 일 못하는 막내며느리로 낙인 찍힌지 오래..

할줄 알아도 난 하나도 모르는 그런 며느리로 여태 살아 왔지만..

일보다도 더 두려운건 형님들과의 보이지 않는 씨름 한판이였다.

 

내새울꺼라곤 시아버지의 아주 급하고 꼿꼿한 성품 때문에 큰형님네가 몇 해 인가를 왕래가

없었다.  시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둘째와 막내까지 서먹해져 버린 그런 관계가 4년정도

흘렀다.  그덕에 세사람이던 며느리가 둘로 줄고는 그럭저럭 마찰없이 지내오며 서로 챙겨주며 싸움없이 서운함없이 지내왔는데 올해가 시아버지 칠순이여서 인지 추석전 둘째 형님네 아들 돌잔치에 몇년만에 얼굴을 디밀었다.

쌀쌀하게 굳은 표정의 형님은 눈길조차 거부하며 둘째 형님에게 흰봉투도 내밀고 아이에게

무어라 이야기도 걸어주고 둘째아주버님 우리 신랑에게도 뭐라뭐라 했지만 나에겐 쳐다볼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하신단 말이지...내가 잘못한것이 뭐가 있다고 나를 벌레보듯 하지?...

기가 막힐 노릇이였다.

 

 처음 결혼하고 시아버지가 유난스레 날 좋아했었다.

샘이  유난스레 많은 형님에겐 난 눈에 가시였다.

시아버지가 좀 자리를 가려 가면서 이뻐해 주셨으면 좋겟는데....늘상 민망할 정도로 나를 옹호하고 쓰다듬어서 가재미 눈을 홀기며 얼굴이 굳어져선 찬바람을 휭휭 내며 나를 대했었는데 그 불똥이 왜 나에게 튀었는지 모르겠다.

 

큰집 아이들도 너무 자라서 어릴 때 모습이 전혀 없어 낯설어 말 걸기가 왠지 서먹서먹했다.

돌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와서는 손님마냥 거실쇼파에 가만히 앉아 있더니 둘째형님 방에서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주방 근처엔 올 생각도 안했다.

집으로 손님들도 오시고 친척어른들도 오셔서 과일 깎아 가면서 돌잔치에서 싸온 음식 냉장고에 넣고 정신이 없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부엌 근처엔 얼굴도 내밀지 않는 큰 형님이 얼마나 미웠던지..

재수없다는 말이 속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기분이 안좋았다.

형님네 친척중에 한복하시는 분이 도착을 하고 서로 한복치수 재고 고르고 정신이 없었는데

둘째형님 결혼식때 맞췄던 그 한복은 한번 입고 장농에 그대로 모셔져 있는데

이런 불경기에  또 한복을 맞추는게 한심했지만 꾹 참고 있었다.

한벌만 다시 맞추면 될텐데 왜 몇십만원씩 들여가며 다시 맞춰야 하는지..

평소엔 근검절약을 외치시던 시부모님들도 한마디 말없이 무서운 큰며느리말에 고개를 조아리는듯 아무소리도 못하고 계셧다.

 

그러니까...한복이며 잔치에 쓸 목돈이며 둘째 형님과 큰형님 두분이 알아서 결정하고 난

그 결정에 아랐습니다 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같은 며느리인데 난 시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으로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거구

큰형님은 윗동서라 둘째 형님은 시부모를 모시는 그 권력으로 둘이 뭉치게 됬다는 말이다.

 

별 감정없엇던 둘째 형님까지 나를 열받게 한다고 생각하니 더 분통이 터져서 그 자리엔 있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기분을 상하고 돌아와 추석이 가까워 질수록 시집에 가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할지

암담하기만 했다.

안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자니 두 형님끼리 쿵짝거릴 껄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 지고..

가서 정말 날 열받게 하면 뒤집어 엎어버리고 친정으로 가버릴 생각도 들었지만..

막내이니까 하란대로 해버리자..그럼 속편한거지.......이렇게 추스리며 시집에 도착했다.

 

시어머니도 큰형님은 무서워서 아무말도 못하고 둘째는 모신다고 아무말 못하고

나만 가지고 호통이다.

둘 며느리한테 못하는걸 나한테 하시는지 나에겐 쓴소리도 잘하신다.

 

"얘...넌 도대체 농사에 대해 아는게 어쩜 그리도 없니..."

서울에서만 자라서 벼도 제대로 구경 못하고 살아온 나에게 시어머니는 가끔 그렇게 핀잔을 주시곤 했다.

깨를 훔쳐올 요량으로 갖은 애교를 부려가며 시어머니한테 깨좀 줘여잉~ 그랬더니 둘째한테 물어보라 하셔 형님한테 물어보니 엄마한테 물어보라 하지..그런다고 내가 공짜를 포기할 애도 아니고 위생봉투에 반정도를 얻었더니 언제 주라고 했냐면서 도둑처럼 모신다.

그래도 히죽히죽 웃어가며 애교를 부리며 '엄마 이거 어떻게 볶아요?" 그랫떠니만

날 아주 깔아뭉기셧따.

제기랄...

호미 낫 구분도 못하고 모 가져와라 시키면 경기도 사투리를 내가 어찌 안다고 그것도 모른다고 핀잔......밭일도 못한다고 핀잔..

참나....결혼전에 농촌으로 시집가려면 농촌 실습이라도 받았어야 했나..

아무튼 별난 시어머니의 핀잔에 의기소침하지만 자존심에 기분나쁜 표시도 못내고

속앓이만 해버리고 말았다.

 

명절 음식을 하며 안 부딪힐 수가 없으니 한참이 지나서 서먹하게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말을 붙이게 되고 ...내 아이들에게 고기반찬 찢어주는거 보면서 ....그래 참자..

막내니까....하란대로 해버리자 ..그럼 내 속 편할텐데..잘됫지..신경안쓰고 시키는 일만 하면 되잖아............이렇게 생각해버렸다.

 

토요일도 휴무였지만 일해야 한다고 둘러대고 추석당일날 서울로 올라와 버렸다.

그렇게 마음 먹었는데 또 다른일로 내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셋이 모이면 서로 힘이 되고 좋을꺼같은데..그게 아니였다.

한번은 내가 가운데서 양다리도 됬고 한번은 내가 똘씨가 되고...

이젠 묵묵하게 포기하면서 살아야 하려나 보다.

 

이번 글도 남 흉보기로 끝을 낸다.

글 읽어주는 분들에게 미안하고 나라는 사람이 투덜대는 빈틈 많은 사람처럼

보일까.. 속없는 여자라고 웃기는 여자라고 생각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한다.

나의 생활은 내가 사는거지 남이 사는건 아니기에..

이런 류의 글을 다른사람의 글로 본다 해도 어쩌면 나 또한 오지랍도 넓다고 생각 할 수도

있고

별것 아닌것에 꿍한 그런 참 한심한 여자로 볼 수도 있겠지..

 

이것저것 불편도 하지만 이렇게 속내를 풀어내며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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