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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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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BY 다정 2003-09-13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스승의 날', 문득 잊고 있다가 떠오르는 많은 분들의 얼굴 중에 유독 가슴 찡하게 살아나는 선생님이 계신다. 작년 안양고등학교 3학년 4반 담임이셨던 김용구 선생님이시다.  순간 순간의 절망과 아픔으로 다가오는 큰아들의 담임이셨던 그 분을 떠올리면 인연의 소중함과 함께 감사함이 우러나온다.
  자포자기는 아니지만 자신감을 잃어 공부보다는 현실도피로 축구와 게임 만화 그리기에만 열중해 늘 불안과 초조함만을 안겨주는 내 아이를 위해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분이다.  부모 이상으로 안타까워하며 쏟아주었던 그 정성은 늘 따뜻함과 고마움으로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다.
  부모도 함께 앓는다는 고3병을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무관심으로 버티는 내게 어느 날 아들 친구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가장 먼저 가정방문을 한 곳이 남편과 아들이 함께 생활하는 학교 앞 자취방이라고 했다. 거기에다 항상 바쁘고 늦거나 출장을 가는 아버지의 부재에 대비해 열쇠까지 복사해서 가지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그 묘한 기분이란……  일말의 안도감과 함께 부족한 엄마로서의 부끄러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쵸코파이 두 통과 음료수까지 사다주고 간 선생님께 고맙다는 전화도 드리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갔다. 성적부진과 함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아들 때문에 속상한 마음과 상처받은 자존심으로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자식보다는 나의 체면유지에 더 급급했던게 아닌가 싶어 아이에게도 선생님께도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어느 날의 일이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니 새벽 두시였다. 이 한밤중에 어디서 온 전화일까?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기를 드니
  "엄마, 엄마, 큰일났어요. 정말 큰일났다니까요."
   숨이 넘어갈 듯한 아들의 목소리였다. 순간적으로 평소에 고혈압 증세가 있는 남편이 쓰러졌다는 말인가 싶어 놀란 목소리로
  "아빠가 어디 다치셨니? 쓰러지셨니? 어떻게 된 건지 빨리 말해봐"
   라고 다급하게 물었더니 어이없는 대답을 하는 게 아닌가!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깎았다는 거였다. 안도감과 함께 머리 깎은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한밤중에 전화를 하느냐고 야단을 치니, 빡빡 중머리를 깎았는데 큰일이 아니냐고 오히려 서운해하는 거였다. 머리를 짧게 깍아라고 해도 좀체로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이라 사연이 있기는 있나부다 생각하며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였다. 몇 명의 아이들을 빼놓고는 모두 미장원에 가서 중머리로 깎았는데 수십명이 되는 학생들을 담임선생님께서 손잡고 인솔해 가서 깎였다는 사연이었다. 순간 속이 시원하면서 키가 작으마한 선생님을 따라 수 십 명의 덩치 큰 학생들이 까까머리가 되어 걸어가는 모습이 연상되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이 너무 고맙네. 엄마는 속이 다 시원하다."
  "나는 화가나 죽겠는데 약올리는 거예요."
   화를 내며 전화를 끊는 아들의 목소리와 함께 내 아이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아닐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찾아뵙거나 전화도 한 번 드리지 못하고 여름방학이 지났다. 얼마나 무심한 엄마였는지 주위 사람들에게는 우리 집에는 고3 아빠는 있어도 고3 엄마는 없다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듣기도 했다.
  9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  처음으로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며 교사로서 엄마로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내 아이의 심리상태에서부터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 건강에 대한 체크와 교우관계, 나아가 대학진학에 관련된 구체적인 목표설정과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세심한 배려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엄마가 보살피지 못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정성을 쏟고 계신 그 모습에서 교사의 참모습을 보았다.  교직경력이나 나이는 비록 나보다 적지만 깊고 참된 교육관과 철학을 느낄 수 있어 존경심이 저절로 일어났다.
'교직에 저런 분만 계신다면 ……' 교육계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진작 찾아뵈었으면 아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을 텐데 하는 후회도 되었다.     
  수능시험을 치기 전 마음을 잡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전화를 주시고, 마지막까지 자취방을 찾아와 과외선생님께도 부탁을 해주신 분이다. 힘든 아이를 이끌어 오느라 지칠때로 지친 가운데서도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걱정해주시던 그 분에게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원서 쓸 때의 일이다. 다른 학생들은 30분이면 끝나는데 희망적이지 못한 수능점수와 내신점수 때문에 무려 4시간 가까이나 노트북을 두드리며 심혈을 기울여 주시던 진지함과 열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합격 통보뿐만이 아니라 졸업 후 추가합격으로 인한 상담까지 해주신 덕분으로 아들은 무난히 대학에 들어갔다.
  내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만난 선생님, 그 분의 이해와 사랑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끝내게 된 점에 대해 늘 감사함을 간직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