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
내게는 손아래 시누이가 한 명 있다. 옛말에 '나무라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이 무색하리 만치 우리 사이는 각별하다. 때로는 다정한 자매처럼, 또는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무엇보다 남편과 자식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든든하고 위안이 되어주는 상담자 이기도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믿음은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짐을 느낀다.
. 생활 속의 지혜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슬기롭게 마무리짓는 그녀는 현모양처의 모범이 되곤 한다. 그리고 시댁의 대소사에는 그녀의 손길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두 오빠를 위해 대학을 포기할 정도로 형제간의 우애를 소중히 여긴 그녀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후 결혼한 시동생 부부에게 쏟는 애정은 동서의 말 그대로 눈물겹도록 정성스럽다.
결혼 후 남편 친구들을 초대하는데 메뉴 짜기에서부터 마지막 설거지까지 능수 능란하게 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오빠와 올케들, 조카들에게 쏟는 정성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날 초대했던 손님들이 다 떠난 후 산더미같이 쌓인 설거지를 보며 부엌바닥에 쪼그려 앉아 한숨만 폭폭 쉬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집안 일이라고는 해보지도 않은 내게 수많은 그릇들은 태산과 같이 보였다. 도와달라 소리도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는 데 날씬한 몸매에 곱게 화장한 그녀가 부엌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 고무장갑을 끼더니 큰 프라스틱 그릇에 물을 가득 채운 후 그릇들을 담그는 것이었다. 그 환상적인 손놀림에 나는 넋이 나간 듯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거품을 낸 수세미로 시원스레 문질러 놓더니 어느새 경쾌한 물소리를 내며 헹구고, 큰 소쿠리에 물 빠지라고 척척 엎어놓은 후 말끔히 마지막 정리까지 다 해놓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가씨, 대단하다. 어째 그리 일을 잘해요."라고 하며 감탄사만 내고 있었으니...... . 지금 생각하면 미안스럽기만 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아가씨가 싫은 표정 하나 짓지 않고 혼자서 해내고도 생색도 내지 않는다는 점이 그 당시로는 신기했다. 순식간에 일을 처리하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경이롭게 느껴졌다. 지금도 우리 집에 몇 년만에 한번 와도 부엌부터 들어와 치워주는 그녀의 무언의 가르침에 친정 올케한테 가면 그녀의 모습을 흉내내어 연출한다. 비록 그녀만큼은 깔끔하고 시원스레 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작은 일로 인하여 친척간의 정이 더 도타워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새벽 두 시에 혼자 병원에 가서 둘째 아들을 놓았을 때도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이 그녀였다. 어렵거나 힘이 들 때 그녀는 항상 나의 입장이 되어 진심으로 염려해주고 안심을 시켜준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때로는 언니처럼 더 의젓하기도 하다.
만나면 불을 끄고 어둠 속에 앉아서 새벽이 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와의 사이엔 비밀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간다. 남편과 자식에 대한 불평을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어주다가도 마지막에는
"언니, 시집 잘 왔지 우리 오빠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데, 우리 오빠한테 잘해줘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맑은 목소리에 마음속에 쌓였던 불만이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항상 침착하고 이지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고운 목소리는 무척 매력적이다. 그러나 작은 일 하나 하나에도 사랑과 정성을 쏟는 그녀의 예쁜 마음은 늘 나를 감동시킨다. 다 죽어 가는 화초도 그녀의 손길만 닿으면 청초하게 되살아나고, 어떤 동물이건 그녀 손에만 가면 토실토실 잘 자라는 것만 봐도 그녀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내 인연의 꽃밭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에 난 행복하다.
"언니, 둘이서 해외 여행 갑시다."
그때가 언제쯤이 되려는 지는 몰라도 그녀와의 여행은 무척 의미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