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
눈 내리는 날은 눈 맑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 눈빛으로 번뇌의 날들을 헹구어 영혼의 때를 지운다면
한 밤중 쿵 하고 내려앉던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도 사라지고
하나 둘 꺼지는 아파트 불빛을 세는 일도 이불 개듯 접게 되리라.
적어도 서너 날쯤은 깊은 잠을 잘 수 있으리라.
눈 내리는 날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잔설이 묻어나는 강변을 바라보며 눈빛의 대화를 나눈다면
찻잔을 스치는 손끝의 온기만으로도
옹글아 붙었던 마음의 주름을 펼 수 있으리라.
절망의 날들도 순간의 기쁨으로 변하고
마주해야될 이별마저도 축복으로 느껴지리라.
눈 내리는 날은 홀로 기도를 하리라.
촉촉이 젖어드는 마음밭에 촛불 하나 켜두면
서러움도 녹아 내리고 슬픔조차 채색되어
마디마디 옭아맸던 그리움도 감사함으로 풀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