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과 문화체험
방학을 하자마자 친정어머니를 오시게 하여 살림을 맡긴 후 평창으로 떠났다. 이번 방학만
큼은 어떤 연수도 받지 않고 휴식만을 취하겠다는 소원을 이룬 셈이다. 심신의 휴양뿐만 아
니라 대도시에 살면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 공연과 대화성당 예술제의 색다른 문화
체험은 짜릿한 흥분과 감동이었다.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오페라와 함께 하는 문화관광 체험축제'는 연이어 쏟아지는 비
로 인해 객석인 운동장은 질퍽거렸지만 탈춤, 판소리, 오페라가 한데 어우러진 환상과 낭만
의 축제였다.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강원도 평창의 용평폐교를 오페라 학교로 단장하고
네 편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도시의 삐에로', 오페라의 대명사인 '카르멘' '김유정의 봄 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강원출신 작가의 작품을 오페라로 재현해 의미가 더 컸다. 식
전행사로 이 지역 농민들로 구성된 '둔전 농악놀이'가 흥겹게 열리고 단장님의 인사말과 함
께 해설이 있은 후 막이 올랐다. 야외공연장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와 아리아
는 한여름 밤을 별 빛과 함께 수놓으며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해발 700미터 지역이라 서늘
한 기운에 두 팔을 감싸안고 감동에 젖다보면 어느새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열어놓
은 창가로 스며드는 감자냄새, 흙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반딧불이 요정처럼
지나간다. 해마다 여름 축제로 열린다고 하니 내년 여름방학이 벌서부터 기대된다.
오페라의 감동 못지 않게 더 큰 감동을 준 문화체험은 8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리는 대
화성당 예술제다. 쉼터, 문화공간, 도시와 농촌간의 문화체험과 나눔의 공간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성당 축제다. 미술전, 음악회, 감자축제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전은 성당 건축을 탄생시킨 조각가 한진섭, 도예가 변승훈, 화가 김남웅 이 세 분의 작
품과 원주 가톨릭 미술가협회 작가들의 작품이 피정의 집에 전시되었다. 소박하지만 깊고 그
윽함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들이다. 경건함과 함께 고개 숙여지는 감동! 나약한 인
간 존재 앞에 구원의 손을 내미는 신의 은총을 느껴볼 수 있는 순간이다.
음악회는 매주 토요일 저녁 7시에 열린다. 국악과 양악의 푸전 앙상블「세뇨」, 피아니스트
신은경의 「영상이 있는 가족음악회」남성 무반주 다성음악 「폴리포니 앙상블」, 남성합창
단 「울바우」, 피아노 신은경, 바이올린 김희진, 장윤정의 「린 트리오」연주회로 이어진다.
노란 우산의 음악동화를 들으면서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에 빠져 행복해 하기도 하고, 영혼
의 울림으로 천상의 세계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폴리포니 합창단의 성가가 잠결에도 들리 듯
여운을 남겨 주었다.
예술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감자축제는 이 곳 성당에서만 볼 수 있는 흥겹고 신나
는 값진 체험이다. 삼굿, 메밀국수 체험, 감자 캐기, 맨손 송어잡기, 가훈 써주기, 산촌 트래
킹, 봉숭아 물들이기, 계곡 물놀이 등의 행사로 풍요와 흥취로 펼쳐지는 신나는 잔치였다. 삼
굿은 구덩이를 파고 장작불 위에 맥반석 돌을 깐 다음 그 위에 음식들을 올리고 솔가지와 인
진쑥으로 덮은 다음 흙을 다시 덮어 음식을 훈제로 쪄내는 것이라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모두들 흥미진진한 표정과 환호성으로 축제분위기를 돋군다. 송어 백 마리, 돼지
세 마리, 감자 옥수수가 백 상자라고 하니 그 양에 또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맛 또한 어
떤 표현으로도 나타내기 쉽지 않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계속해서 나오는 푸짐한 음식 앞에
서 마음껏 먹고도 욕심을 부려 가져가는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인심에 잊혀져
가던 한국인의 정서를 보는 듯 했다. 한편으론 베품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챙기기만 한 도
시 사람들에게 나눔의 미학을 보여주었다고 할까! 내년 축제에는 농민들의 수고로움을 알고
음식 대신 산지 농산물을 사가는 진정 나눔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대화 성당예술제의 문화체험이 값지고 아름다운 것은 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분들
의 정성과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이방인에게도 따뜻한 미소와 친절함으로 쉼터를 마련
해 주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신 신부님의 열정과 수고로움이다. 그리고 삼개월 동안 행사를
위해 시간과 물질로서 봉사하신 성당 교우님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성전에서 핀 예술'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가슴에 따뜻함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 주
었으리라. 내게는 어느 방학보다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 의미 있고 값진 문화체험 연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