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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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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 되든 밥이 되든...


BY 박꽃 2003-10-05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문득 잠에서 깨어나 앉았다.

하루 하루 물 흐르듯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이떡 저떡 주무르듯 내맘대로 세상은 되어주지 않는다.
아직 나의 미래는 뿌연 안개처럼 불투명하다.

요 며칠은 사이버 작가방보다 
새로 만든 블러그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친구의 말이 그 방 글이랑 여기 글이랑 겹치니까 읽는 재미가 없단다.
그래 맞다.
나 찾아 글 읽어주는 이들에겐 그것도 고역이란걸 인정한다.
되도록이면 겹치기 글은 삼가하리라 맘 먹는다.

새로 생긴 핸드폰을 이리 저리 만지며
어느새 기계치로 변한 내가 답답하다.
' 어 옛날엔 설명서 보면 척척 알아듣곤 했는데...'
들여다보면서 이거 만졌다 저거 만졌다 주무르기만 한다.
나보다 아이들이 더 신이났다.
게임 다운 받아서 하고
사진 찍는다고, 동영상 촬영한다고...

사정을 한다.
" 아직 엄마두 제대로 안써본거니까 살살 만져라."
착한 녀석들 핸드폰 사달라도 떼부릴만도 한데,
친구들꺼 보며 부럽기도 했을텐데 
여지껏 욕심내지 않더니 새로 생긴 물건이 좋아보였나보다.
약속을 해준다.
" 엄마가 이제 새 직장 다니면 금새 장만해줄께. 조금만 기다려라."
녀석들 입이 귀에 걸린다.

핸드폰 산거 축하한다고 문자 보내주는 친구들한테 답장을 하려고 만지면
내 손가락이 너무 큰탓인지 자꾸 오타가 나고
지우고 또 지우다보면 문자 보내기가 답답해 전화를 든다.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수첩에 있는 번호들을 입력시키고
친구, 가족, 또 다른 그룹으로 나누고 저마다 벨소리를 맞춰주고...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것 같아 재미는 있다.

어제 아침엔 신랑이랑 입씨름을 했다.
자기 맘대로 나한테 걸려온 전화를 차단시키는 그런 사태를 만든것이다.
첨 면접보고 합격했던 곳에서
교육 일정이 미뤄졌다고 전화가 왔는데
아마도 안갈꺼라고 대답을 했단다.
내가 투정하는 소리를 듣고선 자기맘대로 그렇게 대답을 한것이다.
내 잘못이기도 하다.
그런 소리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 안되면 거기라도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런 사태를 만들었다는 말에
화가 나서 한바탕 입씨름을 한거다.
아직 남아있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지.
정말 무지 무지 속상했다.

인터넷에 올려진 이력서에
신랑 핸드폰으로 입력했던 것을 내 번호로 바꾸자 바로 한통화 왔다.
목요일 면접을 잡았다.
월요일 연락 해주기로 한곳도 남아있다.

시간이 갈수록 슬슬 불안감이 솟아오른다.
이렇게 주저 앉아 있을 시간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기에 조급해져 오는 내마음.
너무 빨리 잘 풀린다고 오만 방자했던 내자신을 되돌아본다.
그래도 아직은 코빠뜨리고 싶지 않다.
세상이란 넓은 물속에 나같은 물고기 헤엄치며 살 곳은 있을꺼라고 믿는다.
아직은 내 나이 마흔을 힘든 나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젠 비서(?) 걸치지 않고 내가 직접 받으니 빠짐없이 챙길수도 있을테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10월 난 꼭 해낼꺼니꺼....

가을의 풍요를 느끼기도 전에 겨울 준비를 걱정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잠든 식구들의 이불울 다시 한번 만져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