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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쓰는 이력서


BY 박꽃 2003-09-16


밤바람이 가을임을 실감케합니다.
귀뚜라미들도 일찍 잠이 들었는지 고요하네요.
오늘은 내 마음도 파도없이 잔잔한 밤입니다.

살던집 도배하기는 새집 도배하는 것보다 몇배가 힘든것인지
정말 표현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늘 살던 집인데도 한바탕 뒤집어놓으니 나오는 그 많은 쓰레기.
마치 내가 쓰레기통 속에서 살았던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제사 집안 정리도 끝나고
1년 11개월을 다녔던 직장에도 이별을 고했습니다.
내가 고통스러웠던 시간에 비해 아주 간단한 절차였습니다.
영원한 적은 없기에 좋은 인사로 마무리했습니다.

욕심같아서는 아직도 배우고 싶은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 다 키워서 시간 남아서 여유부리며 다니는 직장이 아니기에
나에겐 시급한 현실이지요.
누가 본다면 뭐하러 다니던곳 관뒀냐고 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건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내 손을 필요로 하는곳도 있습니다.
지금 했던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
물론 당장 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생활 정보지를 쌓아놓고 
그곳에 가득 채워진 구인광고를 보면서
어느곳이든 내가 손만 뻗으면 내손을 잡아줄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펜을 들고 여긴 이래서 X표 여긴 괜찮군 O표
혼자서 신이 났습니다.
하지만 잠시후 내 자신이 얼마나 주책 맞은지 깨달으며 웃음이 터졌습니다.

전화를 들어 물어보면 얼른 와 달라는 곳도 있고
올려면 와 보라는 곳도 있고
그러면서 꼭 가져오라는것 이력서....

특별한 기술을 요하거나
그 동안 내가 뭘했는지 별로 중요할것 같지 않은 곳일텐데도
나의 이력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건 채울것이 없는 아낙의 한숨섞인 생각이겠지요.)

나이 마흔,
주부 경력 19년차의 나는 그 많은 칸을 뭘로 메꿔야 할까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결혼과 더불어 길지 않았던 직장생활
결혼, 출산.
전업 주부생활, 장사하는 남편의 내조자.
그리고 부업같던 직장 생활.

너무 안일하게만 지내왔던게 아닌가하는 반성이 듭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해야할까요?
나이 마흔에 쓰는 이력서가 오늘 또 나를 돌이켜보게 합니다.
하지만 난 그 이력서를 들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갈겁니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