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농사 망쳤다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빨갛게 익은 고추 따놨다가 제대로 말리지 못해 버리는 집도 많고
병든 고추대 뽑아버린 집도 많고
김장 배추 심어놓은거 녹아서 재탕, 삼탕 다시 모종하는 집도 많더군요.
울동네 서울옆에 바로 붙은 경기도지요.
그린벨트로 꽁꽁 묶여있고 그덕에 공기하난 정말 최고랍니다.
비가 너무 오니까 가을이 왔는데도 가을처럼 느껴지지 않네요.
어젠 집에 앉았는데 쿵 쿵 하면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군요.
'어 벌써 떨어질때가 됐나?' 생각하다가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진원지로 향했습니다.
집뒤 커다란 밤나무에서 벌써 입벌리고 떨어지는 밤.
눈을 씻어가며 밤사냥에 나섰습니다.
몇분되지않아 내 주머니엔 밤이 가득합니다.
그 빗속에도 벌써 이른 밤들은 제몫을 하고자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아마도 맛은 그리 달지 않겠지요.
그러나 가을을 주운것 같은 느낌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이렇게 작은 일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가을운동회때가 되면 밤 삶아서 학교에 오신다는 엄마를 기다리며
많은 사람들 속에 엄마를 찾던 생각도 나고
단발머리 여학교적엔 뭔 폼인지 '난 팝송만 좋아해'하며 라디어 FM에 귀를 기울였고
이 얘기 저 얘기 엽서를 채우기도 하고
나훈아, 조용필은 먼나라 아저씨쯤으로 생각했는데
이젠 그들을 오빠라 여기며 그들과 함께 나이를 먹는것 같습니다.
하교후 집에 오는길엔 그냥 지나칠수 없었던 우리의 주점부리들.
튀김, 떡복이, 만두.....
정말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아이들 눈높이 맞추겠다고 함께 듣는 노래는
가사 불명의 중얼거림으로 들리고
어느새 내 자신이 구세대의 반열에 오르고 있슴이 팍팍 와닿습니다.
여자와 남자의 위치 변화.
너무나 당당해진 아들의 여자친구들의 전화.
아무 거리낌없는 그녀들의 목소리에서 세상이 변해감을 느끼고
적극적인 그녀들의 모습이 반쯤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들뿐인 나에겐 남자들의 미래가 왠지 불안한 모습으로....
시간이 흐른다는 것....
어느새 내 머리엔 너무 이른 하얀 서리가 앉았고
벌써 마흔이라는 훈장을 달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늘 되풀이되는 많은 후회들....
앞으로 살아갈 날만큼은 그런 후회를 만들고 싶지 않은데....
한치 앞도 모르는 우리네 삶이 과연 도와줄까요?
아니요. 도와주지 않는다해도
엄마란 이름으로 아내란 이름으로 어찌해서든 이겨내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리라 다짐하며 시작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