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부
그렇게 우리의 결혼은 시작되었고, 여전히 그는 나와 다르게 회사와 집을 오가며 바쁘게 살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그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그가 출근하고 나면 다시 몽롱한 아침잠에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점심쯤이 되어 그가 거는 전화밸소리에 점심을 차려 먹고, 집안 일을 하다보면 3시쯤... 그가 올때까지 4~5시간을 대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무료하게 뒤척거리다보면 강아지가 주인을 맞이하듯 애교섞인 목소리로 그의 하루소식을 물어가며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그가 좋아하는 비디오로 시간을 죽이곤 욕정에 불타는 그를 침대에서 맞이한다.
이것이 내가 그 사람과의 결혼을 통해 얻은 과분한 안락함과 기쁨(?)인 것이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날 무렵 내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겪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음식을 먹기가 어려웠다. 결국 우리는 합의하에 시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전과 다름없이 나 아닌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지만 나는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음식과 전쟁을 치뤄야 했다. 하지만 무던히도 시어머니는 그런 나를 잘 배려해 주셨고, 임신 4개월쯤이 되어 우리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1박으로 온천을 다녀오기로 했다.
시부모님은 나의 불편한 몸을 생각해 만류했지만 그도 나도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생활에서 잠시 휴식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이천쪽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이미 배가 나오기 시작 한 터라 조금 쑥스럽긴 했지만 시어머니는 자랑스러운 듯 나를 앞장세웠다.
너무 오래있음 임산부에게 안 좋다해서 1시간후 그와 나만 휴게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대강 물기를 닦은 후, 수건으로 위아래를 가리고 밖으로 나오려 했다.
순간 아이들이 유리문을 밀고 뛰어 들어오는 것이 시야로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피한다고 뒤로 물러섰는데...
귓가 저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 우는 소리... 여자들의 아우성... 속삭거림...
어느 순간 더이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그렇게 나는 이틀을 잠들어 있었다 했다.
뱃속의 아이는 사라져 버렸나 보다.
그놈의 온천때문에...
입원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깨어난 이후로 남편의 얼굴도, 시부모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저 친정 엄마와 동생만이 번갈아 가며 내 옆을 지킬 뿐...
동생은 무어라 내게 하고픈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엄마가 말리는 눈치다.
퇴원하는 날 그가 왔다.
"죄송합니다. 당신... 친정에 가서 며칠 더 쉬라구. 내가 요즘 회사 일이 많아서 ... 어머니도 그후로 여기저기 아파하시는 거 같구. 나중에 내가 데리러 가지."
그는 뒤돌아 가버렸다.
......
그렇게 해서 나의 첫 결혼은 9개월만에 끝나버렸다.
-못된 놈, 그깟 유산이 뭐 어쨌다고... 젊은 놈이 .
결혼전에야 어쨋든 간에 결혼하고서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되지.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나서.. 그깟 월급쟁이 주제에~
미친놈. 개놈. 차라리 헤어지길 잘했어.
그래도 저를 위해 아일 가졌던 여자한테 할 짓이냐구. 누가 온천에 가자 했는데... 그 부모도 마찮가지야....-
동생은 가끔 그 남자를 입에 올렸다.
아직 남자의 남자도 모를 거 같은 풋내기 동생은 그렇게 언니를 통해 세상 남자를 알았다 했다.
동생에게 미안했다. 아직 재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본 아이가 무작정 남자라면 미워하고 싫어하는 모습이 날 더욱 씁쓸하게 했다.
...
첫번째 남자를 미워하고 싶진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첫번째 남자때문에 내 결혼이 망가진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다. 그래도 내 풋내기 시절에 가졌던 핑크빛 설레임 이었기에...
두번째 남자를 이해하고 싶었다.
누군가 다른이에게 이미 허락된 육체는 아무리 깨끗이 씻어내려 해도 그 다른이의 체취가 남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비록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