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윤영아... 사랑이 무어라고 생각하니..."
"..."
"사랑은 미지근 한 게 아니야."
"......"
"사랑은 말이야. 사랑은 한순간에 타오르기 시작하는 걷잡을 수 없는 마력같은 거야.
10대들의 무모함, 20대의 정열로 둔갑한 자기도취, 3,40대의 끈끈함, 5,60대의 순종과 기다림, 인내와 용서... 이 모든게 사랑일 수 있겠지.
그러나 난 그렇다. 사랑... 그건 언젠가는 식어버리고 흔적만 남겨 놓는다고...
사랑은 말야. 사탕이나 쵸콜릿과도 같아. 사탕과 쵸콜릿은 입안에서, 혀속에서 끝없이 달콤함을 발산하지. 그 달콤함속에 황홀감을 느끼고 세상만사 온갖 시름을 잠깐동안만 잊게 해 주고는 결국 녹아없어져 버리고 말지."
"녹아서?"
"녹아서 자취는 감춰지지만 입안엔 한동안 그것이 남기고 간 향내가 진동하지. 하지만 그것마져 시들해져 서서히 목구멍 저 밑바닥에선 단내가 꿈틀꿈틀 고개들기 시작하고... 결국 입안은 차라리 그것들을 먹기 이전보다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리는 거지. 차라리... 차라리 안 먹는게 좋았을 걸 하는 후회를 남기며..."
"후회라... 글쎄, 그래도 차라리 먹고 후회하는 게 더 나은 거 아닐까?"
그 남자(선배)는 쓰디쓴 소주를 목구멍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저 소주 역시 마시는 동안엔 시름과 걱정, 괴롬... 모든걸 잊게 해 줄 수 있을 지 모르나 결국 내일 아침이 되면 마시지 않는 편이 좋았을 거란 허탈감을 남기며 쓰린 속을 부여잡게 하겠지...
사랑... 그때 나에겐 아직은 낯선 이름의 이웃일 뿐이었다.
................
우리는 어둠에 저항이라도 하듯 술잔을 기울였고 어느덧 가져온 술도, 현지에서 조달한 술도 모두 바닥나 버렸다. 나는 더이상 술을 마실 수 없을것만 같았다. 순간, 역한 내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윽..."
나는 비틀거리면서 화장실 변기를 부여 잡았다.
어느새 그 남자가 내 뒤로 와 나의 등을 쓸어 주었다.
"자, 술때문에 열나서 더 매스꺼울 거야. 웃옷 벗어봐."
그는 내 스웨터를 벗기기 시작했다.
나는 착한 어린아이가 되어서는 그가 시키는 대로 타일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내 맡겼고 어느새 나의 상의는 브래지어만 걸치고 있었다.
"어... 미안... 크큭. 윤영아, 스웨터만 벗긴다고 했는데 너 티까지 따라 벗겨졌네. 미안. 훗..."
큭큭 웃어대며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자꾸 흔들거리며 다시 구역질로 이어져 변기에 코를 박을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변기와 씨름하고서야 서서히 속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연신 내 등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그러면 괜찮아 질 거라나...
그의 온기가 그의 손바닥을 통해 내 등으로 고스라니 전달되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짜릿함이 서서히 내 내면의 잠자고 있던 욕구를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선배... 내 옷..."
"조금더 있다가... 참, 얼굴좀 씻어."
그는 나를 안아 일으켜 세웠다.
거울속에서 나는 브레지어 한장에 몸을 가리운채 그 남자의 품에 안겨 서 있었다.
우린 서로 피식 웃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뿌끄럽다는 생각도 그다지 나지 않았던 듯 싶다.
......
아주 아주 잠깐동안의 시간이 흘렀던것 같다.
그 남자는 허리에 감고 있던 두 팔을 풀어 내 어깨를 쥐었다. 그리곤 내 어깻죽지에 살짝 입을 맞췄다.
... 짜릿했다...
"윤영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나는 그 두번째 외박을 통해 처음으로 남자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면 아까울게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한다면 그 무엇도 주고 싶다는 나의 막연한 사랑론이 때를 맞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