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어둠을 가르며 들리는 파도 소리와 흩날리는 눈송이들... 그 남자와 나는 이런 설경을 꿈꾸며 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 같다. 이미 서울에도 며칠째 눈발이 제법 굵어지고 있었다.
"도심속의 설경은 왠지 거짓이 숨겨져 있는것 같아. 언젠가 그 본체가 드러날 것 같은 ... 차라리 그 눈이 녹지 말았음 좋겠어. 그럼 그 속이 아무리 더럽고 추악한 들 내 눈엔 그저 새하얀 순수 그대로이지 않겠니..."
그는 가을내내 최류탄과의 싸움으로 지쳐 있었다. 몸도 마음도 쉬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후배가 아닌, 그저 그루터기로써의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나의 두번째 외박을 정당하게 해 주었다.
버스는 눈발속을 힘겹게 달려가고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번 동해행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 이었다.
매일같이 방송에선 폭설로 인해 그 주변이 마비되고 있다 했는데 제아무리 커다란 바퀴에 쇠사슬을 칭칭 감은 무적이라 할 지라도 이 눈발 속을 헤집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코박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 남자(선배)는 나의 불안함을 눈치라도 챘는지 계속 내 손등을 토닥거리며 들어오지도 않는 얘기들을 내 귀에 쏟아 붓고 있었다.
한참이 지났나... 기적처럼 믿기지 않게도 버스는 무사히 자신의 도리를 수행했고, 우리는 동해바다 한 구석진 곳에 쉼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단 하룻밤이라도 도심에서 벗어나 그 찌든 도심을 관망해 보려한 우리의 의도가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그 남자(선배)와 나는 둘만의 공간을, 둘만의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