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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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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으로(14부)


BY 로렐라이 2003-10-20

  14부

 

  "...흐흐흑... 우석씨... 제발... 제발 이러지마..."

  그래, 난 안 우석을 이용해 왔는 지도 모른다... 이 민주의 대용으로 사용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중요한건...

  결코 안 우석을,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와 버린 안 우석이란 남자를 쉽사리 쫒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형... 형이 널 안다는게 좀 그랬지만...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어. 헌데... 형이 다 말해주더군... 결코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구... 또 그 형이 옛날의 어느 여자를 못잊고 그리워한다는 사실도 예전에 알고 있었어. 근데 어제야 비로소 그 그리움의 상대가 다름아닌 너, 바로 이 정은이란 걸 알게 됬어."

  가슴속 저편에서부터 물밀듯이 밀려오는 서글픔이 나의 이성을 뒤흔들고 있었다.

  분노와 허무감에 괴로워하는, 수많은 시간 어둠속에서 괴로와 했을, 술에 찌들어 나에 대한 실망감에 지처버린, 초췌하게 변해버린 안 우석의 모습이 더더욱 나를 쓰리게 한다.

  "... 우석씨... 그래, 그래 맞아. 지금 우석씨가 알고 있는것 처럼 나 이 민주라는 사람 그리워했어. 그래... 한때는 그를 찾으려 수십번... 버스를 갈아타기도 했어. 불이 꺼진 방 한구석에서 이 민주에 대한 그리움으로 수많은 시간 울어야 했구... 그치만, 그치만 우석씨.. 그래, 분명 그는 앞으로도 내 기억속에 아련한 옛 기억으로 남아 있을 거야. 하지만 내 현 상황에선 이 민주보다는 안 우석이란 남자의 자리가 커져가고 있는게 사실이야. 그래... 나도 이런 나의 변화에 놀라고 있어... 결코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10년간의 그리움이 이렇게 다른 한 남자로 인해 서서히 기억속으로 잊혀져 갈줄은...하지만 사실인걸."

  "그렇다면 왜 민주형한데 나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예기하지 않는 거지? 왜 저녁마다 민주형과 전화통화를 해야하며 만나야 하는 거냐구? 응?"

  "......"

  "말해봐. 어서 날... 날 설득시켜 보란 말야. 응?"

  안 우석은 나의 팔을 붙든 채 수없이 흔들어 댔다.

  "...아...우석씨... 제발, 제발 이러지 말아줘. 제발... 우리 앉아서 얘기해. 응?"

  그는 흥분된 감정을 억제하려는 듯 큰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서 털썩 벤치에 주저 앉아 버렸다. 나 역시 지칠대로 지쳐버린 내 껍대기를 그의 곁에 실었다.

  "... 우석씨...

  나에게... 나에게 시간을 좀 줘. 난... 지금 시간이 필요해."

  "시간?

  시간이라고 했니?

  무슨 시간? 무얼 결정해야 하기에 시간이란게 필요한 거야? 하룻밤으론 부족하다는 거야? 왜? 가까스로 찾은 첫사랑의 남자를 놓치기가 아까운거야? 아님, 단지 내가 두려워서? 내가 해꼬지라도 할까봐? 그래? 도대체... 도대체 뭣때문에 시간이 필요한 거야? 응?"

  "제발... 제발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말아줘. 정말이지 왜 이렇게 형편 없어진 거야? 예전에 안 우석은 이러지 않아. 정은이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했던 안 우석은 이러지 않아."

  왜... 스물두해의 마지막 들녘에 서서 이렇듯 힘겨운 걸까...

  왜...좀더 버텨 보지 10년동안 지킨 그리움을 보내버리려 했을까...

  아니... 좀더 빨리 이민주를 잊어버리지 못했을까...

  왜... 좀더 빨리 안 우석에게 내 맘의 문을 열지 못했던 걸까...

  "...정은아, 미안하다. 정말... 이러고 싶진 않았어. 난. 난... 단지..."

  "됐어요.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말아요. 우석씨 마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그래... 사실대로.. 정말 사실대로 말할께...

  10년전 민주오빠를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됬고, 우린 서로를 특별한 관계로 규정하지 않은 채 약 8개월간을 사귀었어. 그러나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버렸어.

  만약, 우리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싫증이 나서 헤어진 거라면 굳이 서로가 서로의 허상에 얽매여 10 여년을 살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우석씨도 들었으니 알겠지만, 우린 제3자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헤어져야 했구... 그렇게 10년이 흐른거야. 그 10년이란 세월동안 나나 민주오빠, 둘다 서로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그런 추억속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몰랐던거야.

  그러나 나 만큼은, 그래, 나만큼은 비록 민주오빠에 대한 배신이라 느끼면서도 서서히 그에 대한 미련들을 체념하게 됬고, 기억속의 저편에 묻어 두려 했어. 단지 그에 대한 현재의 상황들이 궁금한 그 정도, 그래 그 정도로 묻어두려 했어...

  바로 그때 안 우석이란 인물이 내게 나타난거야. 비록 이 민주는 내가 의식적으로 잊어버리려 한거지만... 어쨋든 배신하는 듯한 기분들...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었구... 그래서 쉽게 우석씨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거야.

  하지만 점차적으로 안 우석이란 사람이 내게서  중요해 지기 시작했어. 비록 처음부터 한눈에 반하는 그런 사랑을 느낀건 아니지만...그러나 어쨋든 서서히 우석씨에 대한 내 감정들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그때 바로 과거속에 묻힐 줄 알았던 인물이 현재로 뛰어든 거야.

  두려웠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아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거야."

  그의 격한 숨소리는 어느덧 잔잔해지고... 그는 긴 한숨을 어둠속으로 날려 보냈다.

  "... 난 왜 이렇게 바보같은 걸까... 정은이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도 자꾸자꾸 불안해 지니 말이야...

  하지만... 나...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물을께...

  만약, 나랑 형중에서 한 사람을 고르라면... 아니 골라야 해. 넌?"

  안 우석은 나에게서 무슨 대답을 들으려 하는 걸까... 만일 내 옆에 안 우석이 아니라 이 민주가 있다면 그도 이런 식으로 내게 물어 볼까...

  "... 대답하기 어렵니? 그래?"

  "... 우석씨... 지금 내 삶속에선  아니, 내 마음속에선 비록 한사람은 잊혀지고 또 한사람은 새로이 각인되는 ... 그래, 그런 혼란스런 상태임에 틀림없어. 그러나 곧 정리될거야. 그런데... 그 이전까지는 안 우석, 이 민주 두사람 모두 내겐 소중한 존재들이야. 그렇기 때문에 내게 시간을 달라는 거잖아...

  우석씨... 제발 내게 시간을 좀 줘. 생각할 수 있는,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말야...

  흐흐흑..."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안 우석을 뒤로 한 채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얼마를 뛰었을까...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내 머릿속은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져 버렸다.

  안 우석은 전에도 그랬듯이 내 뒤를 쫒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어둠속에서 더더욱 괴로와하고 있을 것이다. 날 알고 날 사랑했던 지난날들을, 그런 자신을 원망하고 있겠지...

 

                            ********************************************

 

  방안은 주인이 없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썰렁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침대 구석에 세워져 있는 하얀 곰인형만이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은 채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나를 힐책하는 것만 같다.

  정은아... 정은아...

  정말 안 우석을 사랑하니?

  혹... 너의 이기적인 생각이 안 우석을 붙잡아 두려 하는 건 아니니?

  아직 이 민주라는 사람을 그리워 하면서 또다른 제2 의 남자를 마음속에 담아두려 하는건 아닐까? ... 만약 그렇다면... 그건 안 우석, 이 민주, 너 세사람 모두에게 곤욕스러운 일이 될꺼야.

  정은아... 정은아... 대답해봐.

  네가 원하는 사람이 진정 누구니? 정말... 정말 사랑하고픈 사람이 누구냔 말야...

  ......

  비록 방안엔 나 혼자뿐이었지만, 그러나 내 양심은 누군가에 의해 난자당하고 있는 듯 했다.

  물론 나는 결코 안 우석을 이용할 마음도, 붙잡아 두고픈 마음도 없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건지도 ...아...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