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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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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으로(3부)


BY 로렐라이 2003-09-05

  3부

 

  "다녀왔습니다"

  ... 어느덧 난 다시금 내 안식처(?)로 돌아와 있었다.

  나만의 작은 공간...

  불을 키면 모든것들이 달아날 것만 같다. 슬그머니 어둠속으로 손을 뻗쳐 본다.  그러나... 그러나 내게 잡히는 건 아스라히 사라져가는 먼 기억들 뿐...

  "흐흐흑..."

  "...하하...흐흐...  흐흐흑... 오빠... 오빠...  보고싶어..."

  울음이 기여코 입술을 비집고 터져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입술을 꼭 깨물어 보지만... 그러나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무얼 뜻하는 울음인가. 무엇이 보고 싶어서... 무엇이 그리워서... 뭐가 속상해서 말야. 응?

  넌... 울 자격도 없는 인간이야. 넌 순식간에 포기해버린 아주 볼품없는 한심한 아이야. 그도 널 전화 한 통화에 포기해버린 거라구...

  넌 바보멍텅구리야. 아니?

  이 바보야.

 

                                 *************************************

 

  "정은아, 어떻게 됬어? 매너 좋디?... 야 . 결과 보고해야지.. 응?"

  "보고할 것도 없어. 끝났어. 처음 만나서 싸우고 헤어진 건 우리뿐일 거야."

  "야... 기가 막혀서..."

  ......

  그렇게 일주일은 눈 깜짝할 사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혹 교내에서 안 우석과 마주치는 일 따위도 없었고,  그렇게 아무일 없었다는 듯 우리는 일상속에 묻혀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의 사정으로 인해 수업이 휴강되었다.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오는 학생들 속에 우리도, 안 우석과 나도 뒤섞여 있었다. 다들 무슨 할말들이 그리 많은 지 건물안은 어물시장을 옮겨놓은 듯 했다.

  불현듯 누군가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어 있음을 느껴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안 우석이었다. 어둠속에 묻혀 버렸던...

  그는 날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고정된, 나를 향해 있는 그의 시선은 날 그자리에 얼어붓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은아... 왜 그래?"

  지은이도 그를 바라봤다. 안 우석은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굳은 표정으로...

  이미 건물안은 한차례의 소동을 어둠으로 잠재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초면에 죄송하지만 정은이랑 할 말이 있는데 자리좀 비켜주시겠어요?"

 

                             *****************************

 

  건물안 복도는 밝은 햇살에 한치의 양보도 없이 항상 어둠을 유지한다. 10미터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은 아예 보이지도 않게...

  그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도저히 그의 시선을 받아 칠 수 없다. 그저 피해버릴 밖에...

  그도, 나도 모두 벙어리가 되어 버린 건가... 우리 사이엔 아무말도 오가지 않았다.

  안 우석은 아까전 휴강으로 인해 텅 비어버린 강의실로 아무말 없이 들어가 버렸다.

  나도 들어가야 하나...

  그의 행동에 당혹해 하는 사이, 안 우석은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날 강의실 안으로 나꿔챘다.

 마지막 나간 학생의 소행인가... 강의실 안의 불은 몽땅 꺼져 있었다.

  갑자기 잡아채는 통에 내 품에 있던 몇권의 책이 바닥에 나뒹굴며 정막을 깬다. 그의 그런 행동을 탓할 겨를도 없이 그는 다시 내게 갑작스런 행동을 취했다.

  그는 나를 강의실 벽으로 밀어 붙였다. 그리곤 꼼짝달싹할 수 없게 좌우의 벽을 짚어 가로막았다.

  불현듯 두려움이 솟구쳤다. 무서웠다. 이리앞에 놓인 양꼴이라니...

  "저... 나..."

  그는 내 가늘게 떨리며 새어나오는 소리를 삼켜버렸다. 한마디 말과 함께...

  "보고싶었어."

  그는 아무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나의 입술을 훔치기 시작했다. 거칠게, 강하게...

  밀어내고 싶었다. 아니 밀어내야 한다.

  그러나... 그러나 감정과 이성은 다르게 행동하는 건가... 그를 떼어낼 수 없었다.

 그는 벽에서 손을 떼어 서서히 날 감싸 안았다. 귀한 보배라도 품듯 그렇게...  그는 내 머릿결을 어루만지며, 그리고 내 머릿카락속에 얼굴을 묻은 채 그렇게 속삭였다.

  "보고싶었다. 무척..."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앞이 몽롱해져 왔다.

  그는 그의 품에 묻힌 나의 얼굴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갑자기 한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배신자...

 안 우석에 대한 아무 저항없는 내 행동에 대해 배신자라 욕해대는 그 무언가가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른다.

  "미안해. 놀랐지? 이렇게 행동하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도저히 그저 널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 널, 널 안고 싶다는 충동엔 나역시 좀 놀랐지만 말야. 하지만.. 이럴 수 밖에 없었어."

  아직도 떨리는 나의 입술에 그는 자신의 입술을 살며시 맞췄다.

 따스했다. 부드러웠다. 아...

 저항할 수 없는 그의 행동들...

  아니, 이대로 ... 이대로 있고 싶다.

  하지만 갑작스레 10년전 그가, 이 민주의 모습이 창너머로 아른 거린다.

  내 내부에서 치밀어 올랐던 그 배신자라는 말. 바로 이 민주에 대한 잠재된 나의 그리움의 외침임을 어찌 모를까...

 "미안. 이럼... 안돼"

  나는 휘청거리며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아니, 강의실을 빠져나왔다기 보다는 안 우석이란 존재로부터 이민주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싶었단 쪽이 더 맞을 게다.

  포기한 걸가?

  안 우석은 처음 만났던 그날 밤처럼 내 뒤를 쫒지 않았다. 다행스럼속에 서운함이 고개를 든다.

  그가 날 잡아주길 바랬던 건가...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