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하면 경란이가 생각난다. 아이들이 김밥 먹을 동안 선생님들은 부지런하게 하얀 쪽지를 접어 바위 아래나 풀섶 속에 꼭꼭숨겨 두었다. 아이들이 애써 찾은 쪽지에 적힌 보물이라야 공책이나 스케치북 그림물감등속이었지만 그 당시 아이들에겐 보물이었다. 지우개며 문구류가 요즘 아이들에겐 몇개씩 갖추고도 샐운 유행이나 유난히 비싼 것을 구입하는데 당시엔 연필깎는 플라스틱 칼도 아이듦다 다 갖추질 못해 아이들은 서로 빌려 쓰곤 했다.그 무렵 보물을 유난히 잘 찾던 아이가 경란이었다.봄소풍 가을 소풍에서 나는 늘 그 애와 함께 있었는데도 그 애가 몇 개를 찾을 동안 단 한개도 찾지 못했다.
아마 중학교 2학년 때 봄이었을까? 아니면 봄이 약간 지나 여름으로 접어 들 무렵이었을까? 점심시간 도시락을 먹고 졸려서 아마 학교 뒷산에 갔을 것이다. 경란이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네잎클로버를 찾기 시작했다.
" 여기 있네. 아니 요기도."
내가 하나도 못찾을 동안 경란이가 얼마나 빨리빨리 잘 찾는지 놀라울 정도였다.수업시작 벨이 울리는 지도 모르고 우리는 정신없이 그 일에 몰두해 있었다.아마 5교시 시작후 교실에 들어가서 선생님에게 가벼운 야단을 맞았을 것이다.그 애는 거의 꽃다발 수준으로 네잎클로버를 찾아 한 움큼 움켜쥐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것은 행운을 상징할만큼 소중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은 단 한개의 것이 오히려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 이후 나는 네잎클로버를 경란이보다 잘 찾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 했는지 모른다. 가끔 시골길을 걷다보면 힐끗 힐끗 풀밭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토끼풀이라 불리는 익숙한 세잎클로버들이 촘촘한 곳을 지나다가 보면 우연인 듯 네일클로버가 눈에 띄는 것이다. 그러면 한 개를 소중하게 따서 책 갈피나 수첩에 넣고 다시 길을 걷는다.
그런 버릇이 계속되면서 나만의 주특기가 된 걸까?요즈음에는 누군가에게 네잎클로버를 주고 싶다고 생각한 그 순간 만약 풀섶을 지나고 토끼풀이 한 무더기 있으면 어김없이 네잎클로버 하나가 눈에 쏘옥 들어 온다.그 순간 한 개를 채취하여 책 갈피에 넣어 두었다가 곱게 말려서 그 사람에게 코팅하여 준다. 행운을 준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주 오래전 비오는 부산 범어사를 내려와 희선이란 친구와 나란히 길을 천천히 걸을 때였다.마늘밭을 지나며 외할아버지가 막걸리를 드실 때 마늘밭의 마늘을 쑤욱 뽑아서 안주하시던 걸 생각하는 순간 발견한 행운을 외할아버지대신 희선이에게 주었다. 그 이외에는 아직까지 살아있는 사람을 생각하고 발견한 것이어서 생각한 그 사람에게 다 줄 수 있었다.
오랫만에 만난 친언니 못지 않은 분과 담소하며 버스를 기다리던 순간에 잘 포장된 길 옆 가로수의 흙부분에 신기하게도 한포기의 토끼풀 있구나하는 순간 네잎을 발견해서 준 것, 한 번은 친구과 함께 길을 걷다가 친구의 딸에게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외에도 아이들이 입시를 앞두고 있을 무렵 다른 엄마들은 입시기도하느라 오르내리고 법당에서 절을 하곤하는데 간식조차 마련해주질 않는 무심한 엄마란 생각이 스치며 아이얼굴이 떠오를 때 저절로 눈이 멈추면 바로 그 자리에 네잎클로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한 사람을 걱정하거나 기도해주는 마음이다가 모든 집착을 버린듯 무심해졌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너무나 쉽게 눈에 띈 그 것을 채취한 다음 다시 한개 더 찾겠다고 욕심을내어 그 주위에서 안간힘을 다해도 번번히 찾을 수 없는 것이 이상하다.아마 행운을 발견하는 것은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순수하고 무심한 마음자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보다 더 오래전 얘기도 해야겠다.범어사에서의 일보다 더 오래 전 가을 소풍에 경란이와 도시락을 먹는데 김밥이 아닌 쌀밥과 김치를 싸왔는데 맛있게 먹는 밝은 표정만은 하얀 털이 반지르르한 앙고라 토끼같았다.
"이거 쌀밥아니야. 싸라기 밥이야. "
묻지도 않았는데 말하는 그애에게서 난 가슴안으로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지나치게 하얀 쌀밥과 노오란 그애의 얼굴과 토끼처럼 동그란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슬쩍 피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단풍나무가 아닌데 울긋불긋한 잎들이 보였다. 갈참나무잎이나 **나무잎등 예쁜 잎들을 나는 그애보다 많이 주웠다.
중학교 일학년과 이학년을 한 반에서 지낸 그애와 고등학교 때도 같은 반이 되었고 방과후 특별활동인 <명록>이란 문우회활동을 같이 했다.시문화센터에서 시화전을 할 때 가을 소풍에서 본 것같은 낙엽을 깔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 애는 내 마음을 아는지 강력하게 선생님에게 주장하여 여러가지 낙엽을 바닥에 깔고 가을 분위기를 살렸다. 관람객들마다 누구 아이디어냐고 묻곤 했다.
"시몬, 너는 듣느냐? 낙엽밟는 소리를 ."
영탄조로 읊조리는 그 애는 이미 시인이고도 남음이 있었다.
수업시간마다 발표력이 대단한 그 애의 교복은 누군가에게 물려받았음인지 윗옷앞자락이 바짝 치켜올려져 있었다. 바지 아랫단도 키가 일학기 봄보다 많이 자라서인지 칠부에 가깝게 발목위에서 덩그러니 올려져 그 애의 옷이 아닌 것처럼 생소해보였다.가을 소풍이후 많이 친해져서 성내동 언덕위 그 애의 집에가서 옥수수조각과 보리쌀이 섞인 혼합곡밥을 맛있게 먹은 기억도 난다.
그 옛날 경란이가 그렇게 잘 찾던 행운은 가난함을 벗어나려던 많은 노력하는 마음의 습관 탓일런지도 모른다.부자가 되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 수백번 중얼거리다가 부자가 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글을 쓰는 문학소녀가 되었을 때 그 무심한 마음자리에서 저절로 찾아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것이 아니면 네잎클로버를 찾으면 행운을 얻는다는 말만 믿고 행운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한 걸까?
풀밭에 누워 함께 하늘을 바라보던 순간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그애가 살았으면 좋겠다.삶의 풀밭에서 그 애가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으려고 고개를 두리번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뭉게구름 떠있는 하늘만 바라봐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면 좋겠다.바라고 꿈꾸는 순간 저절로 눈에 띄는 풀잎사귀가 행운이 아니라 행운은 마음안에 있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이 행운임을 알았으면 좋겠다.책을 읽고 자기만의 내면을 가꾸며 대화를 나누던 우리의 가난한 그 시절의 만남이 바로 네잎클로버였다고 말해주고 싶다.
언젠가 십년전 고향길에서 아줌마가 되어 길에서 잠시 만났다.말린 고추가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끙끙거리는 모습이었다. 나 자신이 아줌마가 된 것은 생각 않고 그 애의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여주에 살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 이후에 길에서 급하게 주고 받은 번호로 전화를 하니 전화가 되질 않았다.짧은 순간 만난 아줌마의 얼굴은 하나도 생각나질 않고 여전히 내 기억 속의 토끼처럼 동그란 눈을 가진 소녀 경란으로 남아 있다.
나보다 몇 십배 네잎클로버를 잘 찾던 아이에게 이제 내가 너보다 더 잘찾는다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넌 어른이 뭐 그런 풀잎사귀가지고 그러니 하며 서울말씨로 핀잔을 주지나 않을 까? 아직도 내가 문학소녀이던 그 때처럼 책을 많이 읽고 시를 쓴다는 말에 놀라던 얼굴을 가슴속 깊은 곳에서 꺼내보며 아침 이슬 머금은 풀밭에 나가봐야겠다. 그 이전에 천부적인 작가같던 그 애가 오히려 책도 시도 멀리한 세월의 두께를 들추기가 두려운 대신 그 애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푸른 풀냄새에 흠뻑 취해 하루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아주 커다란 네잎클로버가 "나 요기있어!"하며 내 눈안에 담긴 호동그란 그애의 눈동자에 띌런 지 모른다. 그애의 눈동자는 보물찾기 선수였으므로 의외의 깜짝 놀랄 고려청자보다 귀한 보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