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까만색이 싫어졌다.
평소에 제일 좋아하는 3가지 색중의 하나인 까만색이 이유도 없이 싫어진 것이다.
흰색, 하늘색과 더불어 좋아하던 색.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었듯이 싫어하게 된 것도 이
유가 없는 것이다.
아침마다 출근준비하면서 거울 앞에 서면 간단한
머리손질과 가벼운 화장을 하고 주섬주섬 입으면 되는 까만 색상의 옷들....
굳이 어울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이젠 포기해야했다.거의 까만 색과 일체가 되어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터라 다른 색
옷이 있을 리 없어서 옷장앞에 우두커니 서서 뭘 입어야할까 망설이면서 그런 자기자신을 돌아보며 슬퍼지기까지 했다.
어느날 연두색 소매없는 원피스를 발견한 건 어쩌면 큰 수확이었다.지난 해 아는 형님이 주신 걸 한 번도 입지 않고 옷걸이에 걸어두고 보고만 있었다. 내겐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던 그 옷이 예상외로 입어보니 참 잘 어울리는 것이다.연두빛 원피스위에 주황색 장미가 수놓여진 초록의 윗도리가 화사하기만 했다.그 때부터 올여름이 황홀해졌다.
까만 구두를 신고 무신경하게 걷던 것에서 흰 구두하나 사서
사쁜사쁜 걷는 여인으로 변모했다.
까만 색을 일상생활에서 추방한 후 난 비로소 내가 한 여인임을 깨달았다.
주위의 상황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신적인 들뜸의 상태가 왔다.
목소리도 조금 높고 경쾌해졌으며 밝고 명랑한 모습이 마치 가면을 쓴 듯 약간은 어색했다.열네살 사춘기소녀라도 된 듯 웃음소리마저 까르르 내지 키득키득 하는 정도로 바뀌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까만 색을 제외하고 살 수만은 없었다.
한 낮의 태양에서 의식할 수 없는 어두움이 까만 색의 망토를 입고 날 에워싸는 것이다. 어둠이 싫어서 방 안엔 밤새도록 전깃불을 켜 두었다.
전깃불아래서 생각지도 못한 상념이 마당에 나서기만 하면 우르르 몰려 왔다.
바보가 따로 없었다.
사십오세란 나이가 부끄러울 정도이다.어떻게 해서 이런 색을 좋아한다는 이유도 제대로 말 하지 못한다.아니 그렇기는 커녕 무엇을 좋아한다는 개념이 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그래 싫어한다의 반대말?
그 것만은 아닌 포기할 수없는 집착같은 것이 있어야만 우린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난 집착이 없다.
색도 그러할 진대 이제껏 사람이며 일에 꽉 붙들린 집착이 없이 허허허 살아 왔었다.사랑을 해 본 적 없으니 실연을 한 적 도 없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듯이 담담하게 살아 왔다. 남편이 여간 미운 짓 을 해도 사랑하고 집착하지 않았기에 크게 싸우지도 않았다. 아니 거짓말이다. 싸우긴 많이 싸웠다.
마음으로 싸운 것이라기보다 일방적인 그의 요구와 횡포였고 난 거부감없이 무심하게 참아 왔을 뿐이었다.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오고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민들레며 제비꽃이 한없이 예쁘게 느껴지고 봄이며 여름이며 흘러가는 시간이 안타까워졌다.
까만 색을 싫어한 형벌일런지도 몰랐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격동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변화에 감당할 수 없어서 놀라던 어느날 낙서를 했다.
죽음(Die) = 침묵(Silence)= Black
삶(Life) = 대화(Conversation)=White
Die+Life= Blue
이런 낙서를 하며 우울함을 달래었다.
까만색과 흰색과 하늘 색을 그저 좋아하다가 까만 색을 갑자기 싫어하게 된 것이 묵슨 이상한 일도 아닐 텐데 괜히 죽음과 가까워진 중년 여성의 심리인 양 간주해보려던 것이다.
사실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눈을 감고 죽는 순간 내 눈 안에 안타깝게 비칠 보고싶은 얼굴에 대한 기억하나 없다는 것이 서글퍼졌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연애란 걸 못해봤던 것이 그렇게 억울해야할 일일까?
예쁜 딸이 네 명이나 있으면서..
쓴 웃음을 지으면서 어떤 빛깔의 사랑을 할까 고뇌해본다
어떤 빛깔의 사랑을 의도적으로 엮으려하지 말고 지금 나의 현재 곁에 있는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하리라고..
꼭 아름다운 빛깔이 아니어도 무채색이 되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하리라고....
어머니.. 아이들.. 당신.. 선생님... 동료.. 이웃.. 어른들.. 인연 지워진 사람들 사랑하기만도 부족한 세월일 것인데 어찌 미움을 쌓을 시간이 있으랴!
꾸밈없는 내 사랑의 폭포를 맞아야하는 존재들은 바로 까만 어두움속에 파묻혀 있다가 내 사랑을 받고 툭툭 솟아나는 새싹 이어야한다. 새싹 같은 얼굴이 되어야한다.
벼락처럼 그림 속을 뚫고 솟아나는 그리움이어야한다.
이유없이 까만색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까만 정글 속의 알 수 없는 얼굴들이 보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에 까만 밤 같은 색이 대신 싫어진 것이었다.
이젠 됐다싶다.
까만 벽을 허물고 까만 커텐을 태워버리면 된다.
오로지 맑고 흰 뭉게구름 두둥실 떠오르는 푸른 가을 하늘 같은 만남으로
바닷속 물방울처럼 운명 지워진 우리의 만남을 반가워하자.
둥둥둥...
어디선가 축하하는 북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내게 물어보라!
"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
" 흰 색, 하늘 색, 그리고 까만 색이요.'
아마 이런 대답을 하리라.
올 여름 격정적으로 까만 색을 싫어했다는 사실을 숨기며 가을하늘과 뭉게구름과 까만 코스모스씨앗깥은 색을 좋아한다고 말하리라.
이런 글을 쓰게 한 가을도 좋아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