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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찰음에 대한 보고서
BY 바람꼭지 200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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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어느 구석에 잘 쓰지 않고 버려둔 알루미늄 냄비의 밑바닥을 숟가락으로 긁어 보렴.
아마 까맣게 타버린 원망같은 것이 굉장한 마찰음으로 널 놀라게 할 것이다.
아니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종이가 있다면 그종이를 서로서로 부비게 해 볼래.
어쩌면 연보라색 그리움같은 것이 아지랑이의 숨소리로 얽히어 널 울먹이게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거리에서 추위에 웅크리고 있는 걸인에게 다가가 너의 뺨을 그에게 쓰윽쓱 문질러 볼래.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며 사랑비슷한 것이 바알갛게 용광로 쇠가 끓는 소리내며 널 참혹하게 할 것이다.
마침내 분주한 일상의 톱니바퀴에 위태로이 굴러다니는 여인의 마음 밑바닥을 긁어 보렴.
그러고도 당신이 무사할 것인가.
쇳소리보다 아지랑이의 얽힘보다 또 쇠가 끓는 소리보다 더욱 절박한 마찰음을 도저히 당신의 고막은 감당할 수 없으리니.....
여기서 보고서도 이만 중략하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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