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아빠의 자동차 수리는 날이 어두워지도록 계속되고 있다.
여섯시 삼십분.
후레쉬 불을 이쪽 저쪽 비춰주면서
'이렇게 어두워졌는데 아직 밖에서 논다는 건 말이 안돼. 또 누구네 집에 가서 게임하고 있는거야. 이녀석을 어떻게 해.'
난 밖에서 노는 건 용서가 돼도 남의 집에 가서 게임을 한다는건 용서가 안된다.
시간이 흐르고 깜깜해지니 슬슬 걱정이 된다.
'평창동 쯤 놀러갔는데 차비가 없어서 걸어오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게 엄마를 못믿나? 전화하면 기쁜 얼굴은 아니지만 차비갖고 내려갈수는 있는데...'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며 길 이쪽 저쪽을 살피는데
어둠속에 작은 윤곽이 나타났다. 뭔가 가벼워 보이는 모습이다. 분위기가 가벼운게 아니라 학교 갔다오는 아이의 등짐이 없어 보인다. 어둠때문일까 하는 맘으로 가까이 올때까지 바라보고만 있다. 아빠가 있어서 그런지 그나마 주눅든 모습은 아니다.
"가방이 없어졌어요!"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의 인내를 시험하는구나. 오늘 그 많은 대화들이 없었다면 다시 폭발해벌릴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길이 아니었다면, 남편이 없었다면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모든 조건들이 소리지르지 않을 만큼 조율되어 있는것이다.
날도 어두워지고 가방까지 잃어버렸으니 집에 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가방 없어진 사실을 알고 가방 찾아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서 무서운 엄마 얼굴을 떠올렸을 나의 아들. 가슴은 얼마나 뛰고 조마 조마 했을까 생각하니 한편으로 애처럽게 느껴져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하고 많은 가방 중에 왜 하필 우리 아들 가방이냐....."
"어디서 놀았는데?"
"선희 학교요. 다 찾아 봤는데 없어요."
"그럼 경비실에 물어보지"
"물어 봤는데요, 그런일 하는 사람들이 아니래요."
괜히 그 아저씨들한테 화가 난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말을 했을까. 혹시 누가 가방 주워다 맡겨놓지 않았냐는 말인데 너무 불친절했을 태도에 화가 난다. 대단한 끝발이군.. 평온한 마음이 더 흔들릴까봐 더 이상 그 생각은 말기로 한다.
누구랑 놀았는지. 몇시의 상황인지.... 가방찾는데 별도움되지 않는 것 몇가지들을 더 물어본다.
"우리 아들이 왜 그러냐!" 나지막한 아이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 저것 뚜닥거리면서
"여기 비춰봐!"하는 애아빠의 말에 우리의 관심은 자동차 고치는 곳으로 향했다. 마음 한구석에 개운치 못한 문제를 안은채로...
철이 없는건지, 생각이 없는건지, 속이 좋은건지, 성격이 좋은건지
아무일 없었다는 듯 후레쉬 불을 비추고 있는 아들을 어찌 생각해야할지 방향을 못잡겠다.
남편은 작은 스프링이 없어졌다고 찾아보란다.
여기 저기 후레쉬를 비춰가며 찾았으나 보이질 않는다. 불을 자동차 밑 깊숙이 비춰봐도 없고...
"스프링이 도대체 어딜간거야?"라고 내가 말하자
애아빠는 "가방찾으러 갔나보다"고 했다.
"우리집은 참 이상한 집이야. 스프링에도 발이 달렸고"
눈치가 없는건지 코치가 없는건지 우리 아들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그러게말이예요. 가방에도 발이 달렸고 스프링에도 발이 달렸고 참 이상하네요."
이럴땐 웃어야 되나 울어야 되나 기만 막힐 뿐이다.
집안 어디에 스프링 모아둔 것 중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아들을 들여보내기로 한다. 스프링 찾으면 동생한테 보내고 먼저 씻고 있으라 한다.
"목욕하고 뭐하고 있을거니?"
아들이 내가 바라는 방향의 뭔가를 대답하길 바란다. 아마 공부라던지 숙제라던지 일기라던지...등등의 ..학교 생활과 관련된...
"뭘 좀 먹어야겠어요."
"그리고?"
따지듯이 묻지만 엄마가 바라는 건 절대 할 수 없다는 건지
아까 말한 눈치가 없는건지 아무 소리도 않는다. 더이상 다그치다간 잠재워둔 나의 화를 부를 가능성이 높아짐으로
"들어가서 해야할 것 해."하며 간단히 들여보낸다.
스프링은 자동차바퀴밑에서 나온다. 스프링때문에 맞추지 못한 부속품들을 맞추고 앞바퀴와 뒷바퀴를 바꾸어 끼운다. 왜 앞바퀴와 뒷바퀴를 바꿔끼워야 하는지 모르지만 남편은 그렇게 한다.
일을 끝내고 들어오니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있다. 8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이다. 아들이 들어온지 30~40분 지났을 것 같은데 그러고 있는 꼴을 보니 버럭 소리가 질러진다.
'눈치가 없는건지, 아직 크질 못한건지..'
엄마가 당장 화를 내진 않았다 해도 좀 알아서 해주면 고마울텐데....
아침이 되었다.
아들이 왔다 갔다 하더니 한 장소에 멈춰서 이것 저것 살펴보는 것 같다. 옷을 찾나 했는데 벌써 옷은 입은 상태다.
"뭘 찾니?"
"엄마 가방 빌려주시면 안돼요?"
아이는 내 가방을 탐색중이었다. 얼마나 망설였을까 엄마가 물어봐 주어서 그나마 말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안돼......이리 가져와"
난 내 가방에 있는 내용물을 다 꺼낸뒤 아이에게 건네준다.
오늘은 어떤 일로 나의 인내를 시험할지 기대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
2002년 10월 어느날..
글/박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