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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라면도 못 끓이는 여자


BY 박경숙(박아지) 2003-08-26

라면도 못 끓이는 여자

 

그 여자랑 결혼을 하고자 했던 남자는 얼마나 걱정 되었을까.....

 

 결혼 말이 오고 가던 중이었다. 어느날 신랑감이 예고도 없이 점심도 훨씬 지난 시간에 집으로 찾아왔다. 엄마는 외출을 하셨는지 안계셨고 증조할머니와 나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찬밥도 없고 워낙 늦은 점심이라 새로 밥을 할 시간도 없을 것 같아서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라면이라는게 혼자서 끓는 물에 라면 넣고 대충 한번 끓으면 먹는 아주 간단하고 편리한 식품(?)인것은 다들 인정할 거다.

 모 처럼 내게 그 흔한 라면이라도 끓여 대접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작은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 불을 켜고, 물이 끓을 때까지 뭔 얘기가 그렇게 재미났는지 지금 생각하면 멀쓱해질 것들이 그때는 그렇게 좋기만 했나보다. 물이 끓고 라면 하나를 넣었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하나를 더 넣었다. 한개 분량의 물에다...........

 그 뿐인가. 그래도 혼자 먹을 때처럼 대충 끓여주기 섭섭해서 달걀 두개 넣고 파 넣고 지금 같으면 건더기 스프가 따로 있지만 그때 만해도 없었는지 잘해줄려고 했던건지 손질해 놓은 파도 없어서 파 한뿌리 뽑아서 까고 씻고 썰어서..

 그 사이 라면의 상태는 짐작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자꾸 졸아 잦아드는 국물도 새로 붓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라면이 아니라 죽이 되었는지 뭐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

 우아한 상차림을 위하여 접시 새로 꺼내 김치 담고 숟가락 젓가락 챙겨 가지런히 놓고 물 준비하고 시간은 왜 그리 빠르던가. 라면을 덜어 놓으려고 냄비를 들여다 봤을 때의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배가 고프다는데..

 탱탱 불어터진 라면 상을 삐죽이 내민 나는 상머리에서 그래도 맛잇게 먹어주던 신랑감이 고마웠다. 나중에 안 알이지만 곤욕스럽고 한심스러웠단다.

 '라면도 이렇게 끓이는데 밥은 할 줄 알까' 

옆에 계시던 증조할머니는 그 사정도 모르시고 남은 거 있으면 더 갖고 오라고 하시더니

 "젊은 사람이 그렇게 먹어서야 쓰나 많이 먹어야지"

이쁜 증손주 사위감 그릇에 자꾸 덜어주시고,  노인네가 권하는  걸 거절도 못하고 먹어야 했던 신랑감은 얼마나 난감했을까. 그 생각도 잠시, 나의 미련한 실수가 우습다. 가끔 애들한테 그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엄마의 실수가 재밌기만해서 배꼽을 움켜잡고 웃는다. 그러나 남편의 말에선 고민했던 흔적이 남는다.

  "밥도 못 얻어먹는 줄 알았어. 다행히 니 엄마,  밥은 잘하더라"

 

글/박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