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그렇지
엄마 등을 토닥거리며 안겨 있던 석진이를 보고 엄마 놀이를 생각해 냈다. 이젠
누가 엄마이고 딸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지만, 처음엔
"엄마 놀이하자." 손으로 엄마와 석진이를 번갈아 가리키면서
"엄마는 석진이 석진이는 엄마야"
"헉깅이, 엄마." 눈을 반짝이며 따라 하면 우리의 엄마 놀이는 시작되었다.
"엄마"하고 내가 부르면
"응"하고 석진이가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아이는 재미있어 했다. 조금 익숙해
지면서
"헉깅아 밥 먹자. 이건 헉깅이가 좋아하는 꽁밥이야. 꽁밥먹어라".
콩밥을 좋아하는 석진이는 엄마 놀이할 때마다 덩치큰 딸에게 콩밥만 해주었고
"천천히 먹어.물도 먹고."
"한꺼번에 그렇게 먹으면 안돼"
"이것도 먹어, 이건 엄마가 만든 빵이야".
"많이 먹어야 키가 크지." 등등의 잔소리들도 빼놓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작은 일들로 시작한 엄마 놀이는 나의 엄마 노릇이 어떤지 알 수 있게 해주
었다. 아이의 입으로 재현되는 내 모습에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가 두 돌이 될까 말까 하던 때의 일이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내가 응
아를 쌌다고 하면 어떤 반응일까?.' 볼상사나웠을 나의 모습이 아이에게 어떻게 비
쳤을지 걱정됐다.
"엄마, 나 응아 했어요".
"어휴! 그럼 이리와 여기서 씻겨줄께"
엄마놀이 중이지만 엄마가 응아했다는게 신나는가보다.
"나 응아 했는데 화 안 났어요?"
"아니......화났어....."
석진이는 엉덩이를 닦아주는 시늉을 하며 짧게 대답했다. 이상하네, 엉덩이 때려
주는 걸 잊어버렸나?
"엄마 근데 나 엉덩이 안때려줘요?"
"응......"
더럽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인지 별다른 반응이 없기에 궁금했다.
"왜?"
"엄마는 석진이를 사랑하니까 그렇지!"
똑바르지도 않은 발음 속에서 도드라진 '사랑하니까'라는 말에 눈물이 핑돌았다.
늘상보던 엄마를 흉내낼 줄 알았는데 엄마의 잘못을 고쳐 주기라도 하듯 '사랑하니
까' 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대소변 가리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실수를 참고 볼 수가 없었다. '이맘때가 되면 이
렇게 싫어지나 보다'라며 당연한 것처럼 화를 냈다.
"너 왜 또 쌌어? 엄마가 말했잖아. 응아통에서 해야지. 매맞아야 겠지? 이리와 넌
엄마말두 안 듣고............" 소리소리 지르며 매를 들 기 까지 했다. 그런데
아이의 한마디 '사랑하니까' 사랑하기에 때리지 않는다는 아이의 생각에 반성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없이 질러 댔던 소리들과 엄마의 따가운 손에서 아이는 사랑을
느낄 수가 없었을거다. 엄마가 미워서 때린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석진이는 찬찬히 타이르듯
"이젠 됐어. 석진아 다음부터는 이러지마. 응?"
목구멍까지 올라온 울음을 삼키며
"엄마 깨끗해 졌어요? 엄마 고마워요."
"석진아, 응아는 응아통에 하는 거야. 알았지?"
아이는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한번 확인시켰고
"네"
하며 덩치만 큰 딸은 마음이 큰 엄마 품에 안겼다.
'이젠 엄마도 너 처럼 할께,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이렇게 예쁜 네게 왜 그랬
을까. 정말 미안해. 석진아, 엄마는 석진이를 사랑해'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말로 읊지 않아도 아이는 사랑을 느끼는 구나!. 엄마가 아기의 기저귀를 갈면서
느끼는 향긋함이 아이에게는 사랑으로 전해지는구나.
심심할 때나 엄마와 놀고 싶을 때 "엄마 놀이, 엄마놀이" 하면서 따라다니던 석
진이가 이제는
"석진아 이리와, 엄마 밥해야 하니까 애기 잘 보고 있어"
라며 인형을 내밀기도 하고
"엄마 시장 가는데 같이 가자"며 앞장서기도 한다.
엄마 놀이를 단순히 흉내내기로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꼬맹이 엄마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키우고 있었다.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 아이라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에게 무작정 화내고 무섭게 하는 것은 효과가 없으며 엄
하게 기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저편에서 앞치마를 두른 꼬맹이 엄마가 잔소리를 물고 오고 있다.
글/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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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썼던 글...
지금도 엄마보다 맘이 더 큰 딸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